[기고]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모른다 ① | 2,923 | ||
관리자 | 2021.04.26 | ||
양효정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모른다 조지프 P. 샤피로(미국 언론인)가 쓴 미국 장애운동의 역사서 「동정은 싫다」의 서문 제목이다. 그는 서문에서 티모시 쿡의 일화를 소개한다. 장애 인권 소송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장애인 변호사 티모시 쿡이 사망하자 그의 추도 예배에 참석한 옛 친구들이 한 사람씩 일어나서 추도사를 한다. 친구들은 “내가 보기에 고인은 전혀 장애인 같지 않았습니다”라거나 “고인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장애가 가장 적은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제목은 ‘알지 못하거나’, 알고 있더라도 ‘잘 못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더 나아가 ‘알려고 노력’은 해보았느냐는 원망이나 책망까지 느껴지는 뉘앙스의 제목이다. (나만 그런가?) 아무튼 「동정은 싫다」의 저자는 서문에,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의 저자는 대놓고 제목에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알지 못한다”라고 못박고 있다.
장애인 치고 예쁘다? 장애인 치고 똑똑하다? 주위의 장애인들은 종종 이런 칭찬 같은 칭찬 아닌(?) 말들을 듣는다고 한다. 이 말은 장애인은 대체적으로 예쁘지 않고, 대체적으로 똑똑하지 않다는 것이다. 장애를 열등한 존재(신체적, 지적 혹은 영적, 사회적 역할)로 규정하고, 이와 거리가 있는 장애인을 만나면 이런 칭찬 같은, 칭찬 아닌 말들을 여과없이 표현한다. 열등한 존재로 규정되어 졌던 여성에게 “여자 치고 똑똑하다”라는 말을 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티모시 쿡의 일화로 돌아가보자. 이것은 예를 들자면 마틴 루터 킹의 추도 예배에서 “내가 보기에 고인은 전혀 흑인 같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애멀린 팽크허스트(여성참정권운동가)의 추도 예배에서 “내가 보기에 고인은 전혀 여성 같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같지 않다’라는 말은 역으로 ‘~같다, ~답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명확해진다. 주류에 의해 ‘정의된’ 장애인들의 ‘~답다’는 무능력, 무식, 나약함, 불쌍, 보호 받아야 할, 낙오자, 실패자 등 긍정적인 이미지나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역할과 거리가 아주 먼 것들이다. 이러한 부정적으로 규정된 것과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는 ‘장애인 같지 않다’라는 말로, 즉 ‘장애 극복’의 신화로 칭찬한다. 철저한 대상화다. 한 번도 장애인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한 순간도 장애인임을 잊지 않으며 장애 인권 증진을 위해 싸워 왔던 장애인권 운동가의 추도 예배에서 비장애인 동료의 말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티모시 자신의 ‘장애’를 부정하는 말이였던 것이다.
장애를 재정의하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 (존 맥나이트, 1995)’ 1960년대 미국의 자립생활운동을 시작했던 에드로버츠(중증의 소아마비장애인)와 그의 친구들은 1972년 버클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세우며 4가지 원칙으로 자신들을 재정의한다. 첫째, 장애인은 시설 수용이 아닌 지역에서 생활해야 한다. 둘째, 장애인은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도 아니고 보호 받아야 할 어린이도 아니며 숭배를 받아야 할 신도 아니다. 셋째, 장애인은 서비스를 관리해야 할 입장에 있다. 넷째,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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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모른다 ② | |||
[기고] 장애인 학대가 통용되는 사회에 대하여 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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