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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제목 [기고]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모른다 ② 조회수 2,92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4.26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양효정



장애를 재정의하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

(존 맥나이트, 1995)’

 

1960년대 미국의 자립생활운동을 시작했던 에드로버츠(중증의 소아마비장애인)와 그의 친구들은 1972년 버클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세우며 4가지 원칙으로자신들을 재정의한다.

 

첫째, 장애인은 시설수용이 아닌 지역에서 생활해야 한다.

둘째, 장애인은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도 아니고 보호 받아야 할 어린이도 아니며 숭배를 받아야 할 신도 아니다.

셋째, 장애인은 서비스를 관리해야 할 입장에 있다.

넷째,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다.

 

장애인은 시설수용이 아닌 지역에서 생활해야 한다.

 

시설이나 병원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의 수는 약 114,412명 정도(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거주시설 30,980, 정신의료기관 및 정신요양시설 79,343, 노숙인시설 거주 장애인 4,089)이다. 그러나 미신고시설도 포함한다면 더 많은 수의 장애인이 수용되어 있으리라 추정한다.

거주시설 입소 장애인의 86.1%가 타의에 의해 입소하였고, 입소 이유는 24시간 돌봐줄 사람이 없거나(20.74%), 가족의 노령화, 장애 등으로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15.29%)으로 주되게 돌봄문제로 입소한다.

 

보건복지부의 커뮤니티케어 사업에서도 밝혔듯이 시설 혹은 병원에서의 좋은 서비스, 치료효과를 기대하고 입소 또는 입원하기보다는 열악한 주거환경, 재가돌봄서비스의 부족 등으로 필요성이 낮은 사회적 입원(입주)인 것이다.

또한 획일적인 시설서비스는 당사자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87년 형제복지원, 1996년 에바다, 2000년대 성람재단, 석암재단, 광주인화학교(도가니), 최근에 인강원, 인천해바리기, 남원평화의집, 대구시립희망원 등등......인권침해사례도 빈번하게 반복되고 있다.

 

땅 딛는 기쁨을 아세요? 걷는 자유라는 거 무시 못해요.

길거리 다니면서 맛있는 거 사 먹고, 여행 가고, 그런 게 바로 땅 딛는 기쁨이란 걸, 시설에서 나오면서 그걸 느꼈어요.

어디든 다녀볼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고, 사람도 만나고 그런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요.

10년 동안 있었던 시설에는 인권이 없었어요.

10년 세월이 내 인생에서 없어져 버렸어요.”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탈시설 장애인들의 인터뷰를 담은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의 부제는 문제시설이 아닌 시설문제를 말하다이다. 지속적으로 빈번하게 반복되는 비리, 폭행, 갈취, 성폭행 등이 있는 문제시설이 문제가 아니라, 시설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감옥도 형기가 있다는데 한번 들어가면 10, 20, 30..... 죽어서야 나올 수 있다는 형기도 없고 길거리를 다닐 수 있는 걷는 자유조차도 없는 시설 존재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장애인은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도 아니고 보호 받아야 할 어린이도 아니며 숭배를 받아야 할 신도 아니다. (아픈 사람? 순수하다? 장애극복?)

 

화분에 흙을 담는다. 조심스레 파고 물을 부은 후 씨앗을 넣는다. 흙을 덮고 꼭꼭 눌러준다.’

아동이 위의 활동을 하면 생태학습(화분가꾸기) 쯤으로 불리울텐데 장애인이 하면 원예치료가 된다. 수영도 수중치료’, 연극도 연극치료’. 랩도 랩치료’........ 장애인은 결함으로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치료하고 재활해야하는 존재로 취급된다.

한국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되었다면 여전히, 아직도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을 것이라는 척수장애인 이상묵교수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인터뷰 내용은 정확하지 않으나 취지는 미국의 경우 사고이후 3개월이 지나니 적절한 보조기기나 IT기술, 서비스 등을 통해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지원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복귀를 위한 현실적인 지원보다 치료와 재활의 대상으로만 보더라는 것이다. 어쩌면, 아마도, 그랬더라면 강단에서 후배를 양성하고 있는 이상묵교수의 모습 대신 환자 모습으로 한 순간에 불행에 빠진 존재로서 교통사고 예방 = 장애 예방의 사례로만 소비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말처럼 미국이여서 다행이다.

 

한국갤럽조사(1999)에 의하면 비장애인의 81.2%가 장애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순수하다를 꼽았다고 한다.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감상평에는 착하다. 마음이 깨끗하다. 해맑다 등등세상에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하고 어린아이같은 존재여서 감동을 받았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피터팬처럼 어린아이같은 순수한 마음과 순수한 모습을 기대하는 비장애인의 시선은 과잉보호로 장애인을 억압한다. 날이 추워도, 더워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불편하니 외출하지 말고 집에 있어야 되고, 감기가 걸릴 수도 있으니 찬물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불편함도 감기라는 간단한 리스크(risk)로부터도 보호해야하는 존재고 나아가 아이같은 존재로 연애나 결혼, 출산 따위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과잉보호 속에서 뚫고 나와 사회적으로 성취를 일구어내고 인정받은 장애인은 장애극복의 신화로 추앙되고 숭배되는 식으로 소비된다. 헬렌켈러가 대표적인 예이다. 헬렌켈러는 설리반선생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시청각중복장애를 극복한 장애극복의 신화로 주로 소비된다. 그러나 그것은 헬렌켈러의 삶과 그녀의 활동, 일구어낸 성과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여성 참정권운동, 사형폐지운동, 아동노동과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실천했던 작가이자 교육자, 사회주의운동가로서 그녀의 삶을 읽어야 한다. 사회는 그녀의 일부였던 장애만을 그녀의 전부로, 정체성으로, 삶의 성과로 소비하는 것이다.

사회가 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 존재로 대상화하고, 장애는 극복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서비스를 관리해야 할 입장에 있다.

 

장애인은 서비스(복지, 의료, 재활 등)의 대상이었다. 장애인의 문제가 무엇이고 욕구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고 충족해야하는지를 가장 아는 것은 전문가라고 여겨져왔다. 따라서 전문가(의사, 복지사, 치료사 등)는 진단하거나 욕구를 사정하고 목표, 계획을 수립하며 치료 혹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전문가의 결정, 관리, 통제는 장애인당사자의 삶을 재단한다. 선택적 의심과 선택적 개입으로 선택적 정의가 구현된다고 할까.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 장애인의 삶은 이차원적 접근이 아니라 삼차원, 사차원의 입체적 접근을 통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고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존재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은

장애인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역사적인 일입니다.....

앞으로는 장애인이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적응할 수 있도록 사회가 변해야 합니다.

-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서명식에서 고노무현대통령 -

 

그동안 장애인은 개인의 문제로, 장애 그 자체를 바꾸기 위해 치료, 복지, 서비스의 대상으로서의 삶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장애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부적절한 환경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변해야하는 것은 편견과 부적절한 환경인 것이다. 즉 장애인 개인을 바꿔서 사회에 적응토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살만한 세상으로 사회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패러다임은 바뀌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둑을 없애고, 거리에 턱을 없애고, 시설의 벽을 허물고 지역사회에서 마주하며 살아야 한다.

자립생활패러다임이다.

장애인의 커뮤니티 리빙(Community Living)을 위해 지역사회에서 마주하며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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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모른다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