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위한 연속토론회 ⑤
탈시설 장애인의 개인별 주거 제도화 방안
2019년 12월 2일,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선보인 장애인 지원주택 내부의 모습이다. 지원주택 입주자와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있다. 활동가들은 ‘당신의 자립을 환영합니다! 자립생활 응원드려요’,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 ‘장안동 뉴 페이스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탈시설 장애인의 지원주택 입주를 환영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2019년 12월,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장애인 지원주택 제도를 선보였다. 지원주택은 탈시설한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이다. 단순히 시설에서 나와 혼자 살 수 있도록 집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실질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여러 서비스가 지원된다는 것이 지원주택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탈시설 장애인 지원의 핵심으로 주목받는 지원주택 제도는 현재 서울시에만 도입돼 있다.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이었던 지난달 20일, 지원주택을 전국적으로 제도화할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됐다.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주거약자법)’ 개정안과 ‘주거약자 주거유지 지원서비스에 관한 법률안(아래 주거서비스법)’ 제정안이다.
주거약자법 개정안에서는 탈시설·탈원화·탈노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거약자의 대상이 확대됐다. 기존 장애인, 고령자에서 노숙인, 정신질환자까지 지원대상의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주거서비스법 제정안은 주거약자법 개정안에서 명시하는 주거약자가 지원주택에 살며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서비스가 포함된 주거권을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하나의 권리로 인정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의무로 보장하도록 규정했다. 두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뒤 심사를 앞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탈시설을 42번째 국정과제로 공약하고, 올해 8월에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한 만큼 지원주택 제도화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더욱이 작년 12월에 발의된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아래 탈시설지원법)’ 제정안이 통과된다면 10년 내 모든 시설은 폐쇄되며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2만 9662명(2019년 12월 기준)은 모두 지역사회에서 살게 된다. 이들이 주거권을 보장받고 지역사회에서 실질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하는 지원주택이 제도화돼야 하는 이유다.
이를 자세히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20일 오후 2시, 서울시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탈시설지원법 5차 정책 토론회’에서는 지원주택 제도화를 위한 정책과제와 관련 제개정안 통과의 필요성 등이 논의됐다.
토론회 현장. 발제자와 토론자가 한 줄로 앉아 있다. 현수막에는 ‘탈시설 장애인의 개인별 주거 제도화 방안’이라 적혀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수어자막이 있다. 사진 최혜영 의원실 유튜브 캡처
- 필요할 때 언제든 지원주택 신청할 수 있도록 정책 바뀌어야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서종균 더불어민주당 미래주거추진단TF 위원은 주거약자를 위한 정책이 지역사회의 통합돌봄 정책과 결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집을 지을 때부터 주거약자의 편의와 접근성을 고려해 짓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지원해 지역사회에 오래 정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서 위원은 이를 위한 정책과제로 △앞으로 짓는 모든 신축주택에 무조건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 △주거약자의 편의에 맞게 주택을 개조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국가가 지원 △개조를 해도 살기 어려울 경우 주거약자용 주택으로의 이사 또한 국가가 지원 △지원주택 및 주거유지지원서비스 도입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서종균 위원이 지원주택 입주 이후 입주자의 생활이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입주자들은 “새벽에 노래방을 갔다”, “아이패드를 샀다” 등을 증언하며 삶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최혜영 의원실 유튜브 캡처
네 가지 정책과제 중 핵심은 지원주택이다. 서 위원은 “지원주택 여부에 따라 장애인이 탈시설할 수 있는지가 결정될 만큼 지원주택은 중요하다. 내 삶을 내가 결정할 수 있는가, 임대차 계약을 내 이름으로 맺고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는가 등을 따질 때 지원주택이 중요한 토대가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중요한 지원주택의 공급량은 현재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입주자 모집공고가 열리면 신청자의 순위를 매겨 높은 순서대로 지원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 지원주택이 필요해도 못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서종균 위원은 모집공고가 열렸을 때 신청하는 게 아니라, 지원주택이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신청하면 지원주택이 공급되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위원은 “국가가 자립생활 권리를 보장하려면 신청방식이 변해야 한다. 신청자 수만큼 지원주택을 공급하고, 대기자 목록이 있더라도 6개월 이상은 기다리게 하지 않도록 빠르게 공급하는 게 국가의 의무”라고 설명했다.
국가가 의무적으로 주거약자의 주거권, 자립생활의 권리를 보장하게 하려면 법안제정, 정책마련 등 제도화가 필수적이다. 서 위원은 “모든 사람에게 자립생활의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 지원주택이다. 외국에서는 지원주택이 ‘혁신’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혁신을 가장 적극적으로 확산시키는 마지막 단계는 제도화다. 관련 제개정안이 발의된 것은 고무적”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앞서 설명했듯 지원주택은 집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온전한 자립생활을 위한 서비스도 함께 제공된다. 코디네이터, 슈퍼바이저 등 상근인력이 일상생활에서의 욕구 파악, 지역사회 자원 연계, 기타 복지 서비스 지원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듯 주거약자에게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려면 재원이 확보돼야 한다. 서 위원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선 강력한 법적근거가 필요하다”며 지난달 20일에 발의된 두 가지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도희 변호사가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지원주택 관련 제개정안 모두 통과돼야 지원주택 제도화 가능”
앞서 서종균 위원이 설명한 지원주택의 핵심이 지난달 20일에 발의된 주거약자법 개정안, 주거서비스법 제정안에 담겨 있다. 법제를 이원화해 주거약자법 개정안에 따라 국토교통부가 탈시설 장애인 등 주거약자에게 주택을 제공하고, 주거서비스법 제정안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서비스를 지원해 지원주택 제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먼저 주거약자법 개정안에는 ‘자립생활의 권리 보장’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로서 명시돼 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지역사회 자립생활의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사회권이다. 지금까지 사회권은 행정적으로 처리가 되면 그제야 실현되는 권리였다. 하지만 개정안에서는 서비스 공급자 측면에서 시혜적으로 ‘해주는 것’이 아니라 주거약자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권리라는 것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법제의 이원화를 도식화한 화면. 주거약자법 개정안과 주거서비스법 제정안이 모두 통과되면 지원주택 제도화가 가능하다. 사진 최혜영 의원실 유튜브 캡처
그 외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 주거약자의 이용편의에 맞춘 주택개조 지원, 입주기간이나 임대료 등 임대조건 현실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임대료는 시세를 기준으로 하는 게 아니라 주거약자 당사자의 소득이 기준이다.
주택개조 지원의 경우 기존에는 ‘주거약자의 활동능력에 따라 개조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었다. 즉, 신체를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만 주택개조에 드는 비용을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개정안에는 ‘활동능력이 아닌 필요와 선호에 따라 개조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김 변호사는 “활동능력을 기준으로 하면 노숙인과 정신장애인은 배제된다. 하지만 이들도 본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고, 지원받게 하기 위해 이 부분을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주거약자법 개정안의 16조는 주거서비스법 제정안과 연결되는 ‘링크 조항’이다. 이 두 법이 16조로 연결됨으로써 지원주택 제도화가 실현된다. 김 변호사는 “16조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주거서비스법에 따라 주거유지 지원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며 지원주택이 제도화되기 위해 두 법안 모두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거서비스법에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주거약자의 자립생활 권리를 의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돼 있다. 지원주택에 살면서 여러 서비스를 받는 것까지 사회권으로서의 주거권 실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명문화했다.
정치영 사무관이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정치영 국토교통부 주거복지정책과 사무관은 김 변호사가 설명한 ‘활동능력’을 문제 삼는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정 사무관은 “노숙인과 정신질환자 중에는 거동이 불편한 분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대다수다. 이런 분들까지 주거약자법상 주거약자로 포함하면 이분들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 장애인에게 돌아가야 할 지원주택 물량을 빼앗는 역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도희 변호사는 “주거약자가 반드시 활동능력과 결부돼야 할 건 아니다. 정신장애나 노숙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는 주거약자로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문제다. 주거약자의 범위는 보편적 주거권을 고려해 더 확대돼야 한다”며 정 사무관의 우려를 일축했다. 또한 “현재 (지원대상이 노인, 장애인으로 한정된) 주거약자법상에서도 지원주택 공급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금 공급도 부족하기 때문에 물량을 획기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수요조사를 면밀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혜영 의원도 물량이 부족하면 늘리라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국토교통부에서 오셨으면 장애와 관련한 지원을 말씀해 주시고 문제점, 이 제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점을 말씀해 주셨어야 한다. 중요한 건 물량을 늘리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선영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과장 또한 제개정안에 대해 별다른 의견 없이 ‘탈시설 로드맵 수립을 8월까지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약속만을 되풀이했다. 이 과장은 “8월에 탈시설 로드맵을 반드시 수립해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최대한 구체적으로 실무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민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