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제외 장애인 평균임금 37만 원, 40년 전 직장인 월급 수준
시민사회단체 “장애인 최저임금 제외 독소조항 폐지해야”
강은미 의원, 최저임금법·장애인고용촉진법 개정안 준비 중
“보호작업장의 장애인 노동 실태는 심각합니다. 장애인 노동자를 근로자와 훈련생으로 나누는데요, 근로자 임금은 20~30만 원밖에 안 되는 수준입니다. 훈련생은 더 열악합니다. 근로자와 같이 하루 8시간 일하는데 월급은 10만 원입니다. 휴가를 쓰면 급여가 삭감돼서 월급을 5만 원 받은 노동자도 있었습니다.” (아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 조합원)
국회 앞 기자회견 현장. 장애인 활동가와 강은미 정의당 국회의원이 피켓을 들고 있다. 각각 ‘20%의 권리, 37만 원 인생, 보호작업장 단계적 폐지’, ‘작업능력평가 즉각 중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현수막에는 ‘장애인 노동자’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다. 사진 하민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의 작년 평균임금이 월 37만 원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한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는 평균시급이 250원뿐이었다.
장애인 노동자의 임금이 이처럼 형편없는 이유는 최저임금법 때문이다. 7조 1항에 따르면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은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 이 조항 때문에 ‘합법적으로’ 최저임금을 못 받은 장애인 노동자는 작년 한 해 9,060명이다.
이에 시민사회단체와 강은미 정의당 국회의원은 16일 오전 11시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를 향해 최저임금법 7조를 즉각 폐지할 것을 촉구했다.
장애인 노동자의 현실을 통계로 나타낸 그래프. 자료제공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재구성 하민지
- 최저임금 제외 장애인 평균임금 37만 원, 40년 전 직장인 월급 수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공개한 ‘한눈에 보는 2020 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최저임금법 7조 때문에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월 37만 1,790원이다. 이는 40년 전인 80년대 직장인 월급 수준(30~50만 원)과 비슷하다. 전체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 268.1만 원의 14%밖에 안 된다.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109만 6,699원에도 현저히 못 미친다.
시급을 살펴보면, 직업재활시설(보호고용으로서 장애인이 직업훈련을 받는 시설)에 근무하는 장애인 노동자 평균시급은 2019년 기준 3,056원이다. 같은 해 법으로 정한 최저시급은 8,350원이었다.
장애인 노동자의 고용불안정도 심각한 상황이다.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36.3%인데 장애인 노동자는 59.4%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 노동을 하더라도 위험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월급도 적고 일자리도 안정적이지 못하다 보니 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 또한 압도적으로 낮다. 전체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이 63%인데 반해 장애인은 37%다. 중증장애인은 21.3%로, 경증장애인 44.2%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 중 뇌병변장애인은 14.4%로 처참한 수준이다.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장애인 노동자 최저임금 적용제외 최저임금법 7조 즉각 폐지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한 ‘근로능력’ 개념 철폐돼야
시민사회단체는 최저임금법 7조가 “차별을 고착화하는 대표적 악법”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독소조항이 폐지되지 않는 이유는 ‘근로능력’, ‘고용불능’ 등의 개념 때문이다. 장애인은 근로능력이 떨어지므로 고용이 불가능한데 고용하는 것이니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보호고용’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보호작업장이나 직업재활시설 등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불안정한 일자리에 가두고 있다.
장애인 노동자가 최저임금을 받으려면 ‘작업능력평가’를 받아서 근로능력이 있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2018년,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기준’을 작업능력의 90%에서 70%로 변경했지만, 최저임금을 못 받은 장애인 노동자 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문에서 “이는 작업능력평가가 얼마나 자의적인 평가기준인지, 누군가의 노동능력을 평가한다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작태인지 분명히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국제사회는 비장애인 기준의 근로능력 개념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부가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를 금지할 것을 권고한다.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보호작업장을 폐쇄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국제노동기구 또한 올해 ‘근로능력’, ‘고용불능’ 등의 개념이 철폐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달 21일 열린 고 김재순 장애인 노동자 추모제 현장. 서울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이 추모제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문화예술 직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이다. 사진 하민지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보호고용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 이후 장애계는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를 폐지하라고 정부에 수도 없이 말했다. 결론은 ‘이해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라고 규탄했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적용이 안 되면, 오히려 장애인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현재로서는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대안이 왜 없나. 서울시, 경기도, 전라남도에서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일자리를 강화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보호작업장에 장애인을 몰아넣는 방식을 고수하려고 한다”고 성토했다.
강은미 의원이 ‘작업능력평가 즉각 중단!’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최저임금 적용제외는 장애인 노동착취… 강은미 “개정안 준비할 것”
이 같은 현실이 ‘장애인 노동착취’라는 발언도 있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임금의 최저선이다. 헌법에 근거해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이 최소한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액수다. 하지만 장애인 노동자는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되고 하한선마저 없다. 그야말로 노동착취다. 서울의 한 직업재활시설은 한 달간 200시간 넘게 근무한 장애인 노동자에게 평균시급 250원을 적용했다”고 비판했다.
강은미 정의당 국회의원은 최저임금법과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지난 14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 청원이 10만 명을 달성했다. 장애인 노동자가 최저임금을 못 받는 현실은 이 입법청원과 괴리된다.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 폐지를 포함해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를 민간으로 확대해 의무고용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준비하겠다”라고 말했다.
활동가들과 강은미 의원은 기자회견을 끝낸 후 최저임금법 7조 폐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임금차별’, ‘장애인 적용 제외’, ‘보호고용’, ‘작업능력평가’, ‘시혜와 차별’, ‘최저임금법 7조’, ‘보호작업장’ 등의 문구가 적힌 상자가 쌓여 있다. 사진 하민지
활동가들이 뿅망치를 휘두르자 상자들이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지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하민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