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지원법·권리보장법 제정 농성 100일… ‘국회 100바퀴 투쟁’ 선포
탈시설지원법은 발의 6개월… 국회에서 논의 안 돼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소문만 무성… 제정 움직임은 없어
투쟁 100일째를 맞은 이룸센터 앞 농성장. 사진 하민지
투쟁 100일째를 맞은 이룸센터 앞 농성장. 손으로 만든 달력에는 '2021년 6월 17일 100일 차'라고 써 있다. 사진 하민지
장애인 탈시설지원 등에 관한 법률(아래 탈시설지원법)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이 17일로 100일을 맞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오후 2시, 농성 100일 기념 기자회견을 열고 100일간 하루 한 바퀴씩 국회의사당 담벼락을 둘러싸고 행진하며 양대법안 제정을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현수막에는 ‘국회 농성 100일 기자회견 및 국회 담벼락 100바퀴 산책 선포’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100일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재… 문재인 정부는 묵묵부답
천막농성은 지난 3월 16일, 서울시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에서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며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탈시설 지원 정책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100대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하지만 임기가 1년도 안 남았는데 약속이행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정부의 직무태만을 성토하고 양대법안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의사당 근처 이룸센터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이 100일을 맞은 17일,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당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공약으로 냈다. 임기 1년을 남긴 지난 3월 24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올해 안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내용을 반영해 장애인의 권리를 강조한 내용으로 법안의 방향을 제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문재인 정부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추진과 함께 올해 8월까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수립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탈시설’이라는 용어 사용을 꺼리며 시설협회의 눈치를 보고 있다. 작년 12월 10일 탈시설지원법이 발의됐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국회에서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서재현 전장연 정책실 활동가는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19대 국회 때 1개 법안당 평균 처리기간이 517일이었다. 20대 국회에서는 10개 법안 중 6개가 폐기됐다. 그러나 법안이 6개월, 빠르면 일주일 만에 통과되는 사례도 있다”며 “결국은 정부와 국회의 의지에 달렸다. 정부와 국회는 양대법안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혜영 의원은 탈시설지원법이 발의된 지 6개월이 넘도록 논의를 시작하지 않는 동료 국회의원을 향해 ‘지금 당장 논의해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했다. 사진 하민지
- 시설에서 죽고 다치는 장애인들… 국회 탈시설지원법 논의 시작해야
탈시설지원법이 국회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않는 동안 시설에서는 장애인이 죽고 다치기를 반복했다.
지난 3월, 경기도 여주시 라파엘의집 종사자 15명이 장애인 7명을 폭행·학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라남도 화순군 거주시설에서는 발달장애인 김 아무개 씨(18세)가 지난 5일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김 씨의 몸에는 멍 자국, 상처 등 학대정황이 뚜렷하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장연은 이 같은 인권침해 사례를 언급하며 “문재인 정부가 탈시설 정책을 시급하게 시행하고 국회가 당장 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탈시설지원법을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권리의 주체로 살아가야 한다고 외친 지 100일이 됐다. 그간 국회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국회의 무수한 비장애인 국회의원이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며 “국회는 비장애인의 느린 속도를 버리고 장애인의 전동휠체어 속도로 양대법안을 제정해야 한다. 당장 논의를 시작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 이사장은 “‘탈시설’이라는 용어도 수용하지 않고 탈시설 정책에 관해 아직 논의조차 한 적 없는 정부가 과연 제대로 된 탈시설로드맵을 수립할지 의심스럽다”며 “더 이상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지 말고 지역사회에서 살겠다는 당연한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탈시설지원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권달주 전장연 공동대표가 ‘보건복지부는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계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는 장애등급제의 ‘진짜’ 폐지를 위해서다. 2019년 7월,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됐지만 ‘등급’이 ‘장애 정도’로만 바뀌었을 뿐 장애인을 의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근본적 문제는 바뀌지 않았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를 의학적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사회적 억압과 배제, 차별의 현상’으로 본다. 장애계가 제안한 제정안에는 장애의 개념이 ‘개인의 특성과 사회환경 간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한 결과’로 정의돼 있다.
이처럼 장애를 사회적 개념으로 정의할 경우 장애인에게 지원되는 서비스 내용이 달라진다. 정부와 지자체는 장애인복지법의 의학적 기준에 맞춰 장애인을 구분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달리 장애인권리보장법에서는 장애로 인해 사회활동과 참여에 어려움을 겪어서 서비스나 권리옹호가 필요한 모든 사람을 지원한다.
또한 한국 정부가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해 당사국의 책무와 이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게 하기 위한 국가 재원 확보방안도 명시한다.
박경석 전장야협 이사장은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었던 장애인을 권리의 주인으로 세우는 법이다. 이 법의 제정은 재활이란 개념 속에서 장애인을 치료대상으로 보는 정책을 버리고 당연하고 당당한 장애인의 자립을 상징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이 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대체 언제 약속을 지킬 것인가”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앞으로 100일간 하루에 한 바퀴씩 국회 담벼락 주변을 행진하며 양대법안 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권달주 전장연 공동대표는 “100일간 108배를 하는 심정으로 국회 주변을 행진할 것이다. 두 법안이 올해 안에 제정될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가 수십 명이 행진하는 가운데 경찰들이 이들을 둘러싸고 있다. 사진 하민지
휠체어를 탄 활동가, 목발을 짚은 활동가들이 국회 담벼락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경찰 수십 명이 이들의 행진을 과잉진압하기도 했다. 사진 하민지
하민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