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 중심의 능력주의 교육체계’에 균열 내겠다
‘장애 대학생 무상교육’ 등 고등교육 강화한 특수교육법 개정안
장애인 평생교육법안 제정 투쟁 밝혀, 4월 내 발의 예고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개정, 장애인 평생교육법안 제정을 위한 결의대회가 10일 오후 2시,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교육권위원회 주관으로 열렸다. 결의대회에서 박동섭 인천 민들레장애인야학 학생이 발언하고 있다. 그의 뒤로 펼쳐진 현수막에 ‘장애인 교육권’이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다. 사진 강혜민
장애계가 ‘비장애인 중심의 능력주의 교육체계’에 균열을 내기 위한 교육권 쟁취 투쟁을 선포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개정, 장애인 평생교육법안 제정을 위한 결의대회가 10일 오후 2시,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교육권위원회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특수교육 대상자, 장애인 대학생과 장애성인 학생, 특수교원, 장애인교원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여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에 맞춰 양대법안을 발의하고 올해 내 제·개정을 위한 강도 높은 투쟁 전개를 결의했다.
헌법에서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교육권을 명시하고 있으나, 교육현장에서 장애인의 교육권은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전장연 교육권위원회는 “장애인이 교육에서 소외되는 근본적 원인은 비장애인 중심의 능력주의 교육체계 때문”이라면서 “이에 대한 균열을 내는 투쟁을 시작하고자 한다”고 선포했다. 이들은 장애인의 생애주기별 교육지원 체계 확립 등 장애인 교육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받는 2007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아래 특수교육법)’ 제정을 끌어낸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의 투쟁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양대법안 제·개정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장애인 특수교육법 개정, 장애인 평생교육법안 제정… 어떤 내용일까?
2007년 제정된 특수교육법은 분명 장애인 교육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갖지만, 현실을 견인해내기엔 부족한 점이 있다. 특히 장애인의 고등교육에 대한 영역은 턱없이 허약하다. 2020년 기준으로 장애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17%로, 전체 대학진학률 72.5%에 비하면 형편없이 낮다. 대학 문턱도 높지만, 설령 입학하더라도 제대로 된 지원을 받기 어렵다.
전장연 교육권위원회는 “대학 내에 장애학생 고등교육 지원에 관한 컨트롤타워가 부재하여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를 총괄하는 국가차원의 고등교육지원센터 설립, 학내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책무성 및 전문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특수교육법 개정안을 소개했다. 또한, 장애학생의 대학 입학 문턱을 낮추기 위해 장애학생의 대학 교육을 무상으로 지원하여 영아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의 완전 무상교육 체계 구축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기룡 중부대학교 중등특수교육과 교수는 “대학 무상교육은 교육운동단체에서 많이 제안하던 것으로, 경쟁 위주의 왜곡된 한국의 서열화된 대학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 방안 중 하나”라면서 “대학 무상교육은 아직 어떠한 대상에게도 시도되지 않은 파격적인 안이다. 만약 장애학생의 무상교육이 먼저 실현된다면 이를 시작으로 한국의 학벌중심의 사회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장애인평생교육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특수교육법 개정과 함께 ‘장애인평생교육법안 제정’도 준비 중이다. 장애인의 경우, 중학교 졸업 이하 학력이 전체 장애인의 54.4%(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달할 정도로 학령기 의무교육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학령기 때 교육받지 못한 장애인은 성인이 된 후 평생교육을 통해 배움을 충족하고,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여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 평생교육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매우 열악하다. 2018년 기준 특수교육대상 학생 1인당 평균 특수교육비는 연간 3,039만 8,000원이나 장애인 1인당 평생교육 예산은 연간 2,287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장연 교육권위원회는 평생교육을 ‘권리’로 명확히 규정하고, 중증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 기회 보장을 위해 국가 및 지자체의 책무성 강화, 장애인 평생교육 전달체계 구축, 장애인평생교육시설 지원 강화 등을 담은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평생교육의 목표는 사회통합이다”라면서 “이를 위해서는 기계적인 (사회)이동이 아닌, 사회 전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평생교육을 시혜와 동정이 아닌 권리로서 국가와 지자체가 보장할 때,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를 변화시키고 최중증장애인도 배제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법에는 평생교육을 고용, 복지와 연계하여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박 이사장은 “현재는 노동과 교육이 분리되어 있는데 교육받으면서 일하고, 일에 지치면 교육받는 순환이 가능해야 한다. 서울시에서 최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중증장애인 권리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을 하는데, 바로 그러한 노동에 대한 지원체계로서 평생교육이 기능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그는 “평생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최중증장애인들은 현재의 능력중심사회에 편입될 수 없다”면서 “평생교육‘권’을 인정받는 것은 중증장애인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며 시민권을 획득해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개정, 장애인평생교육법안 제정을 위한 결의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 사진 강혜민
- 유기홍 의원 ‘장애인 평생교육법안 대표발의 준비’ 밝혀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양대법안 제·개정에 함께하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축사도 이어졌다.
장애인 평생교육법안 대표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유기홍 교육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장애학생들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받도록 하는 특수교육법은 장애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과거 그 법을 만든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서 “18세 이상 성인 장애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나 현재 장애인 평생교육을 위한 시설과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장애인 중 평생교육 받는 사람은 4.8%로, 일반성인 평생학습률 44.5%의 10분의 1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 교육위원장은 “특수교육법을 만들었던 연장선에서 장애인평생교육법도 대표발의해서 통과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특수교육법 일부개정안 대표발의를 준비 중인 김철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최혜영·장혜영·배진교·이은주·강은미·강민정 의원 등도 영상을 통해 양대법안 제·개정에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결의대회에서 야마가타 트윅스터와 노들야학 음악대가 축하 공연으로 흥을 더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여전한 분리교육, 차별적 대우… 양대법안 제·개정으로 진정한 통합교육을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여전히 차별받는 장애인 교육 현장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일반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는 김헌용 함께하는 장애인교원노조 위원장은 시각장애인 당사자다. 그는 “초·중·고등학교 12년 동안 시각장애인학교에서 분리교육을 받았다”면서 “교사가 된 후 처음으로 일반학교에 발을 내딛게 되었는데 분리되어 자라온 내가 비장애인학생을 가르칠 수 있을까, 다른 선생님들과 어울리며 교육을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과 불안감이 가득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내가 근무했던 모든 학교에 특수학급이 존재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장애인 학생은 고립되어 있다”면서 “장애인에겐 더 많은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 양대법안 제·개정을 통해 말로만 그치는 통합교육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통합교육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현지 장애인권대학생네트워크 고려대 장애인권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현지 장애인권대학생네트워크 고려대 장애인권위원장은 대학 내 차별을 전하며 특수교육법 개정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박 위원장은 “대학에 비치되어 있지만 노후한 보조기기, 재원 한정으로 개인에게 부과되는 각종 경제적 비용들, 있어도 유명무실한 이동편의지원, 비전문가가 절대적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장애학생 도우미, 전담직원 부족 및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장애학생지원센터가 바로 오늘날 장애인 대학생들의 현실이다”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최근 대학은 정원 수가 지원자보다 더 많아 문제라고 하나 장애학생들에겐 먼 이야기”라면서 “높은 대학진학율에 장애학생들은 소외되어 있다. 많은 학과들이 장애인을 뽑지 않고, 설령 입학하더라도 장애학생 지원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아 학업 유지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박 위원장은 “우리는 배려가 아닌 시스템이 필요하다”면서 “장애 유형에 따라, 각자 처한 환경에 맞춰 평등하게 교육을 통한 성취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배리어프리한 캠퍼스에서 누구나 제한 없이 교육받고 사회에 나아갈 준비를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나가자”고 말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보통 학생들은 부모로부터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으며 적극적 지지를 받지만, 우리 장애인들은 ‘공부하라’는 소리는커녕 ‘너 같은 사람이 공부해서 뭐할 건데’하는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자조했다.
최 회장은 “장애를 이유로 교육받지 못하는 것은 분명 차별이다. 장애가 배움에 무슨 상관인가”라면서 “우리 장애인들도 배워야 살 수 있다. 양대법안이 제·개정될 수 있도록 지역구 의원들 찾아다니면서 열심히 닦달하자. 그래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자”고 외쳤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양대법안 제·개정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