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시설협회, ‘탈시설 정책 전면 재수정’ 요구하는 성명 발표
탈시설 확장될수록 위협받는 시설 예산, 이권 놓칠 수 없어 탈시설 반대?
일부 범죄시설의 문제 아냐… 좋은 시설은 없다

지난 7일, 서울특별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아래 시설협회)가 서울시 탈시설 정책에 대해 전면 재수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시설협회는 이번 성명에서 탈시설은 “개인의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의 하나”이며 “시설 장애인의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장애계가 외친 ‘긴급탈시설’이 “누구를 위한 결정인가?”라고 묻는다. 이들은 지난 2019년 5월에도 서울시에 탈시설 정책을 요구하며 “시설은 감옥”이라고 표현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명예훼손”이라는 항의 공문을 보낸 바 있다.

이들이 수정을 요구한 정책은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제2차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 2021년 시행계획’과 ‘장애인탈시설 지원 조례’다. 특히 ‘장애인탈시설 지원 조례’를 즉각 철회하고 이를 대신해 ‘서울시 장애인 지역사회 거주 (전환) 지원에 관한 조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성명을 비롯해 이제까지 일관되게 드러난 시설협회의 입장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시설협회는 ‘거주시설을 없애야 하는 적폐’로 바라보는 ‘탈시설’이라는 단어 사용을 극구 거부하고, 시설 또한 여러 주거 형태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장애인 당사자의 ‘주거 선택권’을 강조하며 ‘거주전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탈시설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프레임으로 탈시설 논점을 흐리려는 의도다.

지난 7일, 서울특별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가 서울시 탈시설 정책에 대해 전면 재수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지난 7일, 서울특별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가 서울시 탈시설 정책에 대해 전면 재수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사적 관계에 떠맡겼던 부양의무를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탈시설

시설협회는 탈시설이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의사를 무시”한 채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장애인 당사자에게 탈시설 의사를 물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시설에 수용할 때는 당사자 의사를 묻고 수용했는가. 시설 안에서 밥 한 끼라도 지금 먹고 싶은지, 오늘 반찬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묻고서 준 적 있는가? 오늘 옷은 뭘 입을지, 오늘은 늦잠 자고 싶은지, 당신은 어떠한 종교를 택하고 싶은지, 물은 적 있는가? 시설협회는 그 누구보다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무엇보다 자기결정권을 이야기할 때 배제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자기 의사표현을 하기 어려운 중증발달장애인이다.

이번 성명에 ‘서울시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대표’가 시설협회와 함께 이름을 올린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시설 존재의 필요성으로 “가족 기능의 위기”를 든다. 그러나 가족이 돌볼 수 없다는 이유로 거주시설에 들어가야 하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돌봄이 가족에게 전가되어 왔음을 드러낸다. 즉, 가족이 탈시설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부양의무 때문이다.

취약한 존재는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없는가? 즉, 존엄성이 한 개인의 능력만을 따져 주어지는 것인가? 이때 사회는, 국가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탈시설은 국가가 사적 관계에 떠맡겼던 부양의무를 공적으로 회복해가는 과정이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송파구 사회복지법인 신아원 산하 신아재활원. 시설 현판 주변에 ‘집단감염 시대! 긴급탈시설 이행하라’,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하라’ 등이 적힌 피켓 수십 장이 붙어 있다. 현판 오른쪽에는 장애인 활동가가 신아원 정문을 막고 있다. 사진 하민지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송파구 사회복지법인 신아원 산하 신아재활원. 시설 현판 주변에 ‘집단감염 시대! 긴급탈시설 이행하라’,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하라’ 등이 적힌 피켓 수십 장이 붙어 있다. 현판 오른쪽에는 장애인 활동가가 신아원 정문을 막고 있다. 사진 하민지

- 탈시설-자립생활 확장될수록 줄어드는 수용시설 예산 비율

결국 시설협회가 이야기하는 자기결정권은 시설에 중증장애인을 묶어두기 위한 허울 좋은 핑계일 뿐이다. 시설협회가 탈시설을 이토록 거부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자신의 이권 때문이다.

우리나라 수용시설 대부분은 민간사회복지법인이 국고 보조금을 받아 운영한다. 시설 예산은 ‘장애인복지’라는 이름으로 집행되지만, 종사자와 운영비에 쓰일 뿐 시설 장애인의 몫이 아니다. 그렇게 정부는 자신의 역할을 민간에 떠맡겼고, 민간법인은 국민 세금으로 자신의 배를 불렸다.

그러나 탈시설-자립생활이 확장될수록 정부의 거주시설 지원 예산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참여연대가 작성한 ‘2021년도 장애인복지 예산안 분석’에 따르면, 2021년 보건복지부 예산안에서 ‘자립생활 예산’이라고 칭할 수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장애인연금 등이 전체 장애인복지 예산안 중 74.7%를 차지하는 반면, 거주시설을 중심으로 한 장애인복지시설 예산은 16.6%에 불과하다. 과거와 비교하면 변화는 더 또렷하다. 2015년만 해도 자립생활 예산은 66%였으며 시설 지원 예산은 24.8%였다.

국가가 감당할 수 없어 버렸던 장애인은 시설 안에서만 온전히 한 사람의 몫으로 셈해져 시설에 돈 벌어다 주는 머릿수로 기능했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수가 줄어들수록 그에 비례해 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필연적이다. 게다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자립생활 예산에 대한 증액을 요구하는 장애계의 목소리가 나날이 거세지는 현 추세를 고려한다면, 앞으로 거주시설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한 활동가가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한 활동가가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 탈시설은 시설을 없애자는 것이다

시설협회는 “운동적으로 풀어가고자 할 때에는 탈시설이라는 용어 사용은 필요할 수 있”으나, “탈시설의 목적은 기존 시설을 폐쇄하는 탈시설 자체에만 있지 않고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이루는 것”이기에 탈시설을 “법이나 제도 등에서 행정용어로 사용하지 않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탈시설은 그야말로 ‘탈(脫·벗을 탈)시설’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의 다른 이름은 ‘시설폐쇄법’이기도 하다. 법안에는 장애인을 배제하고 감금했던 전국의 모든 시설을 10년 이내에 폐쇄하자는 구체적인 실천이 담겼다. 정부의 탈시설 선언은 장애인을 분리·배제·수용했던 역사와 단절하고, ‘시설 중심’의 장애인복지 패러다임을 ‘지역사회 자립지원’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탈시설은 법이나 제도 안에서 행정용어로 사용되어야 한다.

장애인거주시설 내 인권침해 뉴스는 이제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시설협회는 일부 시설의 문제일 뿐 모든 시설을 문제시설로 매도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시설의 폐쇄성, 보호라는 이름의 배제와 수용, 시설 운영을 중심으로 한 이권 다툼 등 시설이 존재하는 그 구조 자체가 문제다. 그러한 구조가 지속되는 한 규모, 지역, 형태를 가리지 않고서 잇따라 발생하는 장애인수용시설 내 인권침해와 비리를 막을 순 없다. 오히려 물어야 하는 것은 ‘왜 장애인은 시설에 분리되어 살아야 하는가?’이다. 좋은 시설은 없다.

시설협회는 “속도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브레이크를 걸고 싶어 하지만, 이는 속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시설수용은 아주 구체적인 개인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지연될 수 없다. 우리에겐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자유만이 필요하다. 탈시설을 선언하지 않는다는 것은, 복지라는 이름의 국가폭력과 대감금의 시대를 유지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사회복지의 사전적 정의에 비추어봤을 때 탈시설이야말로 사회복지의 참된 실천이다.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여, 지금 당장 탈시설에 연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