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금전 피해 2억 원, 가해자 친족이라 처벌 불가
친족상도례 규정… 60여 년간 친족·범죄 범위 점점 확대
장애인의 고소능력·처벌의사 부인되고 무시되기도
친족상도례 시대착오적 규정… 형법 개정해야
최근 방송인 박수홍 씨가 친형을 재산 횡령·배임으로 고소했지만, 친족상도례 규정 때문에 피해 구제가 어려울 수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형법 68년 역사에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친족상도례 규정은 ‘가정 내의 일은 가정에서 해결하도록 둔다’는 과거 정상가족 중심의 법제도로 많은 폐해를 안고 있다.
특히 가족의 돌봄과 통제, 간섭에 자유로울 수 없는 장애인·아동·노인에게는 더욱 불리한 제도로 지목된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간 확인된 장애인 대상 경제적 착취 학대사례는 총 630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가족 및 친·인척이 학대 행위자인 경우는 전체의 약 19%다. 그러나 장애인의 ‘경제적 착취’는 장애인학대로 인식되지 않을뿐더러 가족이 가해자일 경우 처벌도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14일,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장애인 경제적 착취, 친족상도례 적용 여전히 타당한가?” 토론회를 열고, 친족상도례의 한계와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에 14일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장애인 경제적 착취, 친족상도례 적용 여전히 타당한가?” 토론회를 열고, 친족상도례의 한계와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 지적장애인 금전 피해 2억 원, 가해자 친족이라 처벌 불가
지적장애인 ㄱ 씨는 지난 2014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삼촌과 숙모를 만나게 됐다. 삼촌과 숙모는 ㄱ 씨에게 함께 지내자고 제안했고, 2014년 12월경부터 함께 지냈다.
당시 ㄱ 씨는 아버지가 물려준 2억 원가량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삼촌과 숙모는 함께 살던 3~4년의 기간 동안 ㄱ 씨의 상속재산을 임의로 취득했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의 대가로 받은 급여, 퇴직금 등도 갈취했다. 삼촌과 숙모는 ㄱ 씨의 명의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오피스텔을 사서 소유권을 자신들의 자녀 명의로 이전하고, 은행계좌에서 돈을 인출했다. ㄱ 씨의 피해액은 2억 4000여만 원에 이른다. 또한 금융기관 대출금 1억 원이 ㄱ 씨의 명의 채무로 남겨졌다.
부산장애인권익옹호기관 등에서 ㄱ 씨의 공공후견인 선임을 하고, 삼촌과 숙모를 준사기·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ㄱ 씨가 삼촌과 숙모와 함께 살았던 기간에 행한 범죄에 대해서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을 적용해 ‘공소권없음’을 결정했다. 공소권없음은 검사가 공소를 할 권리가 없다는 의미로, 사건에 대해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ㄱ 씨는 막대한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이후의 피해마저도 구제받을 길이 막혀 버렸다.
지난해 3월 ㄱ 씨의 공공후견인과 대리인단은 형법 친족상도례 규정이 청구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친족상도례 헌법소원심판 대리인단인 황용현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가 발제하고 있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유튜브 영상 캡처
- 친족상도례 규정… 60여 년간 친족·범죄 범위 점점 확대
형법은 범죄의 요건과 그 범죄에 대한 처벌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328조(친족간의 범행과 고소) 제1항에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의 제323조의 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친족상도례’ 규정이다.
헌법소원심판 대리인단인 황용현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는 “친족상도례 규정은 강도죄, 손괴죄 외의 재산범죄가 발생한 경우 범죄의 유형, 죄질, 피해자의 특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필요적으로 형을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라며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형이 면제되는 효과가 발생해 검사는 ‘공소권없음’ 처분을 내리고, 사실상 공소가 제기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친족상도례 외국입법례 비교. 황용현 변호사 발표 자료 캡처
친족상도례 적용 대상 범죄 비교. 황용현 변호사 발표 자료 캡처
황 변호사는 “친족상도례 규정은 형법이 제정된 1953년 당시부터 존재했는데, 입법취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없지만 ‘가정 내부의 문제는 국가형벌권이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입법취지에 대한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라며 “형법이 21차례 개정되는 동안 오히려 적용 대상 범죄의 종류가 추가되고, 1990년 민법 개정 때 친족의 범위가 모계 및 여계 혈족과 인척까지 확대되어 결과적으로 친족상도례 규정의 적용범위는 시대의 변화와 관계없이 확대되었다”고 지적했다.
친족상도례 규정이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넓은 범위에 적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친족을 8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및 배우자로 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민법에서 친족의 범위를 ‘6촌 이내의 혈족과 3촌 이내의 인척 및 배우자’로 우리나라보다 좁게 규정하고 있으며, 형법상 형면제 대상이 되는 친족은 ‘배우자, 직계혈족 또는 동거친족’으로 한정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친족 적용 대상 범위가 제한적이고, 형면제 규정도 없다.
- 어렵게 고소했지만, 장애인의 고소능력 처벌의사 부인되고 무시돼
제철웅 한양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친족상도례는 가족상호간에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친족상호간이 아니라 힘이 있는 친족이 약한 친족에 대한 일방적 재산 착취로 악용될 여지가 크다”라며 “특히 아동, 장애인, 노인 특히 치매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불리하게 적용되는 사례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형법 제328조 제2항에는 ‘제1항 이외의 친족 간에 323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장애인일 경우 고소하거나 고소 과정을 도울 수 없는 경우도 많아 처벌할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정민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팀장은 “더 큰 문제는 고소를 해도, 장애인의 처벌의사와 고소능력을 의심해 고소가 취소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잠실야구장에서 10년 넘게 친형에게 노동착취를 당했던 ㄴ 씨의 사례다. ㄴ 씨의 친형은 2006년 피해자 명의로 보장급여를 신청해 통장을 직접 관리하면서 2018년까지 총 188회에 걸쳐 급여 및 수당 6800여만 원을 횡령했다. ㄴ 씨를 잠실야구장 적환장에 보내 급여통장을 관리하면서 1400여만 원을 주지 않고 가로챘다. 게다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매달 기초생활수급비 및 장애수당 1800여만 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사용했다. ㄴ 씨는 친형을 고소하고, 고소장에는 ‘피의자에 대한 처벌을 원한다’고 밝혔다. 경찰 진술에도 처벌의사를 재차 밝혔다.
친고죄에서 고소능력 내지 처벌의사가 부인되거나 무시된 사례. 이정민 팀장 토론회 자료 캡처
그러나 불기소됐고, 불기소처분통지서에는 ‘피해자는 피의자를 고소했고, 진술조서에는 처벌의사를 밝히지만, 심리평가보고서의 기재 내용에 의하면, 이 사건의 범죄혐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의자의 불법영득의사 및 피의자에 대한 처벌희망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에 구애됨 없이 판단함이 타당하다’라고 적혀 있다.
또한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의 처리 결과 통보서에는 ‘피해자는 지적장애 2급의 장애인으로 고소능력이 없고, 귀 기관의 수사의뢰는 (중략) 피해자 외 고소권자는 친족이라 할 수 있는 형 A이지만 A는 피의자이므로 (중략) 피해자의 고소권자인 B, C에게 A의 고소의사를 물었음에도 고소의사가 없거나 접수되지 않아 (중략) 불기소(공소권없음) 의견으로 종결 예정’이라고 적혀 있다.
이정민 팀장은 “피해자들은 피해를 인지하고 고소를 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어렵게 고소했는데도 그 의사가 무시되거나 고소능력이 부인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라며 “충분한 법률 지식이나 소송 비용이 없고, 나를 배신한 가족 외에 다른 지지체계가 전혀 없는 피해자들에게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라는 것은 결코 답이 아니다. 민사법원에서는 고소능력을 부인 받은 피해자의 소송능력을 인정해줄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정민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팀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유튜브 영상 캡처
- 친족상도례 시대착오적 규정… 형법 개정해야
토론자들은 친족상도례가 시대착오적인 규정으로 형법 개정이 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형법 개정 논의와 더불어 장애인복지법 등에 장애인의 경제적 착취 피해에 대한 구제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지난 3월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대 행위자가 친족 관계의 장애인을 상대로 사기·공갈, 횡령·배임, 권리행사방해죄를 저지른 경우,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장애인복지법 개정은 한계가 있다. 이정민 팀장은 “장애인에 대한 경제적 착취 행태는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띤다. 사기, 횡령, 배임이 아니라 명의도용이 발생할 경우 형법상 사문서위조죄로 처벌된다”라며 “장애인복지법은 기본적으로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률이 아니기에 많은 형사처벌 규정을 세세하게 넣는 것은 힘들다. 장애인학대에 대한 특례법이 논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방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 또는 강하게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장애인복지법 개정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형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차성안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성주 의원 발의안은 학대피해 장애인에 한정돼 있고, 점유이탈물횡령, 절도죄는 빠져 있다”라며 “아예 친족상도례 자체에서 형면제 부분을 없애는 방안이나 독일과 오스트리아처럼 반의사불벌이나 친고죄, 임의적 감면 등을 적용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 장애인 개별 시민으로 인정할 때, 장애인학대 사라질 것
그러나 법 개정이 근본적인 장애인학대, 장애인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막을 수 없다는 게 토론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유진아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우리 사회는 장애여성의 독립을 상상하지 않는다. 장애를 가진 몸이 사회에서 제 몫의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으며 그것은 가족 단위에서 돌봄과 보호를 통해 해결될 것이라 기대한다”라며 “장애여성이 차별과 폭력 속에서 침묵해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집단을 벗어난 삶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 장애여성에게 가족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하지 마, 가지 마, 먹지 마’ 이른바 3무(無)다. 성인이 되어도 장애인에 대한 돌봄과 통제가 있는 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가족 내에서 가해자이든 친인척이든 시설이든 장애인은 불평등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장애인 학대 사례는 언제든 발생할 수밖에 없다”라며 “추상적이지만, 장애인을 지원하고 조력하는 상대가 아닌 살아갈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부터가 경제적 착취를 비롯한 장애인학대를 줄이는 시작이다”라고 제시했다.
허현덕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