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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마이너] 탈시설 역사를 새로 쓰다 : 향유의집·도란도란 조회수 1,24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4.30

탈시설 운동 시작점 된 향유의집, 설립 36년 만에 시설폐지 
‘쉼터’ 목적 도란도란, 거주인 전원 탈시설… 시설폐지
탈시설 후 시설폐지됐지만, 종사자 고용유지 문제 남아

“나, 나가고 싶다. 나를 데리고 나가라”던 한 거주장애인의 외침으로 시작된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장애인거주시설(아래 거주시설) 향유의집과 도란도란의 거주인 전원이 탈시설에 성공하면서, 법인 스스로 ‘시설폐지’를 신청했다. 도란도란은 이미 지난 3월 31일 시설 문을 닫았으며, 향유의집은 오는 4월 30일 자로 폐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시설폐지 사례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 등 장애인권단체는 29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시설을 통한 자발적 시설폐지’를 환영했다. 향유의집과 도란도란처럼 법인과 사회복지사가 주도한 탈시설이 아닌, 이제는 중앙정부 주도의 탈시설과 시설폐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권단체는 29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시설을 통한 자발적 시설폐지’를 환영했다. 사진 허현덕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권단체는 29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시설을 통한 자발적 시설폐지’를 환영했다. 사진 허현덕

- 탈시설 운동 시작된 향유의집(구 석암베데스다요양원), 36년 만에 폐쇄 

향유의집은 120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던 대형 거주시설이었지만, 지난 3월 거주인 전원이 탈시설하면서 4월 30일 시설폐지를 앞두고 있다. 설립된 지 36년 만이다. 향유의집은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의 초석을 다진, 마로니에 8인이 거주했던 거주시설이다.    

향유의집(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의 옛 이름은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이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의 사회복지재단인 석암재단은 이사장의 친인척이 주요 요직을 맡은 족벌 경영을 했다. 이들은 간식비, 후원회비, 거주인 장애수당 횡령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 이때 일명 ‘마로니에 8인’은 장애수당 갈취 사실을 복지부에 알렸다. 서울시의 감사 결과 법인 운영자는 구속되고, 법인은 해임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 그 시설에서 살기 싫었다. 무작정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한켠에 세간을 놓고 농성을 시작했다. “집을 달라”는 요구였다. 

고 박종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시설장애인의 역습'의 한 장면. 마로니에 8인의 세간이 트럭에 실려 있다. 사진 시설장애인의 역습 영상 캡처고 박종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시설장애인의 역습'의 한 장면. 마로니에 8인의 세간이 트럭에 실려 있다. 사진 시설장애인의 역습 영상 캡처

마로니에 8인 중 한 명인 김진수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2.5톤 트럭에 8명의 짐이 다 실렸다. 마로니에 공원으로 와서 무조건 천막을 치고 짐을 놓고, 발언도 하고 할 말이 없으면 노래도 부르고 그랬다”라며 “그때도 오세훈 시장이었는데, 우리가 (자립생활 기반 만들어달라고) 오세훈 시장을 무지하게 따라다녔다. 오세훈 시장이 우리와 참 인연이 많다”라고 떠올렸다. 

62일간의 투쟁으로 서울시에 서울시복지재단 산하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가 설립됐다. 또한 체험홈·자립생활가정(현 자립생활주택) 등 주거정책이 마련됐다. 이는 2013년 ‘서울시 1차 탈시설 계획(2013~17)’으로 이어졌다.

10년 간 지역사회에 살면서 잊을 법도 한데, 김 소장은 처음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갔을 때를 잊지 못했다. 그는 “우리 형에 이끌려서 아침 8시 반경에 도착해 아침밥을 먹었는데, 다 식은 카레와 뭉쳐진 밥이 식판에 담겨 있었다. 그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날부터 중증장애인 7명과 한 방에 살았다. 원장은 내 머리카락이 길다고 자르기 싫다는데도 듬성듬성 머리를 잘랐다”라고 떠올렸다.  

이어 “시설에서 만난 한 친구는 지난 3월에야 지원주택에서 자립을 시작했다. 24시간 활동지원 못 받아서 망설였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시설에서는 연락이 끊겼던 가족들과 왕래도 잦아졌고 얼굴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라며 “서울시탈시설지원조례가 만들어지고 중앙정부에서의 탈시설 정책이 만들어져, 시설이 사라지고 시설장애인들이 나와서 같은 동네에서 어깨 맞대고 웃으며 사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월 30일 시설폐지를 앞둔 향유의집 전경. 사진 허현덕4월 30일 시설폐지를 앞둔 향유의집 전경. 사진 허현덕

- ‘쉼터 목적’ 도란도란, 거주인 전원 탈시설 이뤄 시설폐지

향유의집이 거주인과 법인, 거주시설 노동조합, 탈시설운동단체에서 함께 만들어낸 성과라면, 도란도란은 강자영·김치환 사회복지사 두 명이 거주인 전원 탈시설을 이뤄냈다. 도란도란은 지난 3월 31일 시설이 폐지됐다. 

탈시설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회복지재단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도란도란은 2009년 염전노예사건 등으로 알려진 학대 피해 장애인의 일시 거주 쉼터(정원 20명)로 출발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쉼터 설립 근거가 없어 장애인생활시설로 등록됐다. 따라서 한시적 쉼터로서의 기능을 해야 했지만, 원장과 대부분의 종사자들은 생각이 달랐다. 거주시설로 여긴 것이다. 강자영·김치환 사회복지사가 2016년 5월 입사 후 탈시설-자립지원 업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자, 시설은 이들을 오히려 업무에서 배제하고, 부당 징계와 갑질을 일삼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난 3월, 18명의 거주인이 모두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거주지가 마련됐고, 자립을 시작했다. 도란도란에서 10년 동안 거주하고, 지난해 4월 시설에서 나온 이용찬 씨는 자립생활 소감을 밝혔다. 

“도란도란에서 독립할 때 원장님이 체험홈까지 와서 ‘여기서 나가면 지원이 끊긴다’고 그랬다. 그리고 ‘시설에서 한 번 나가면 못 돌아온다’고 그랬다. (중략) 그래도 나한테 집도 생기고 시설에서 나가면 활동지원 선생님이 도와주시고 생활(사회)복지사 선생님도 도와주신다고 해서 굳게 마음을 먹고 나왔다. 시설에 모여 살 때는 간섭이 너무 많고 서로 터치하는 게 싫었다. 먹을 것을 사면 나눠 먹자고 쏘아 보면서 혼자 먹냐고 하고, 혼자 어디 가면 못 가게 막고 그래서 기분이 나빴다. 기분 나쁘다고 말해도 소용없고. 새벽에 누가 방에 들어와서는 사물함에 넣어 두었던 제 돈을 가져갔다. 지금은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다.”

도란도란에서 10년 동안 거주하다 지난해 4월 시설에서 나온 이용찬 씨는 자립생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 허현덕도란도란에서 10년 동안 거주하다 지난해 4월 시설에서 나온 이용찬 씨는 자립생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 허현덕

강자영 도란도란 사회복지사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거주인들이) 자립 준비가 안됐다’였다. 그러나 도란도란 거주인들은 스스로 임대주택을 마련했고, 노동을 했고, 문화활동과 취미활동을 했다. 정성껏 경작한 텃밭 작물을 이웃과 나누며 살았다. 이들의 활동을 보고 나중에는 지역사회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을 돌리며 ‘탈시설의 희생양이 된다, 투쟁의 수단이 된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라고 힘든 과정을 털어놨다.

이어 “발달장애인거주시설 도란도란은 문을 닫았지만, 그 안에서 인연을 맺은 당사자 분들은 지역 주민으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라며 “이제부터 ‘진짜 준비’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에 필요한 부분을 지자체와 복지부 등에 계속 요구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도란도란 노동자들은 탈시설 당사자, 부모, 장애인권단체가 함께하는 ‘탈시설협동조합’을 추진 중이다.    

- 거주인 전원 탈시설 후 시설폐지, 그러나 ‘종사자 고용문제’ 남아

그러나 향유의집과 도란도란 폐지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도 있다. 종사자의 고용유지다.

향유의집 종사자 29명 중 고용승계된 종사자는 11명이다.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의 타 산하시설로 8명, 지원주택 운영사업자로 3명이 갔다. 그러나 나머지 종사자는 실직했다. 강자영·김치환 사회복지사도 3월 30일 이후로 ‘실업’ 상태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탈시설을 통한 시설폐지를 법인, 노동조합, 사회복지사가 이뤄야 할 일은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사진 허현덕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탈시설을 통한 시설폐지를 법인, 노동조합, 사회복지사가 이뤄야 할 일은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사진 허현덕

향유의집 이사장인 김정하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거주 장애인들이 자립해 즐겁지만 시설폐지로 권고사직, 해고당한 노동자가 있다. 향유의집 모든 종사자가 고용승계 되었다면 정말 이 자리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만세삼창을 불렀을 것이다”라며 “고용승계가 제도적으로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정부가 조금 더 넓게 사고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의 급여가 국가와 시의 보조금으로 100% 충당이 되는 만큼 ‘진짜 사장’은 정부다. 정부가 탈시설 정책을 힘 있게 끌고 나가려면 탈시설-자립생활 일선에서 일했던 종사자의 고용보장을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탈시설 정책이 정립되어야 한다. 서울시는 지난 3월,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 계획을 밝혔다. 정부 또한 오는 8월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다. 

김 활동가는 “향유의집과 도란도란의 폐지는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탈시설을 통한 시설폐지를 법인, 노동조합, 사회복지사가 이뤄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장애인이 탈시설할 준비가 안 되어서 못 나온다는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탈시설 후 활동지원 추가시간이 두 배로 주어져야 하고, 탈시설정착금도 올려야 한다. ‘시설 말고 내 집에서’라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가 이뤄지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정부,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자영(오른쪽) 도란도란 사회복지사와 참가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손팻말에는 ‘서울시는 탈시설 이후의 정착지원을 확대하라!’, ‘서울시는 탈시설 이행 약속을 지켜라!’라고 써 있다. 사진 허현덕강자영(오른쪽) 도란도란 사회복지사와 참가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손팻말에는 ‘서울시는 탈시설 이후의 정착지원을 확대하라!’, ‘서울시는 탈시설 이행 약속을 지켜라!’라고 써 있다. 사진 허현덕

 

허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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