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럽연합 시민사회, 성평등·장애인 인권·이주민·난민 권리 논의
주한 유럽연합 대사 “차별금지법, 국회 입법 기대한다”
유럽과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성평등, 장애인, 그리고 이주민·난민 인권을 중심으로 반차별 위한 국제적 연대를 다졌다.
19일 오후 3시 30분, 한국-유럽연합(EU) 시민사회 네트워크(KEN)의 주최로 ‘한국-유럽연합 시민사회 컨퍼런스: 반차별을 위한 교류와 협력’이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렸다.
19일 오후 3시 30분, 한국-유럽연합 시민사회 네트워크(KEN)의 주최로 ‘한국-유럽연합 시민사회 컨퍼런스: 반차별을 위한 교류와 협력’이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렸다.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María Castillo-Fernandez) 주한 유럽연합 대사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유럽연합시민사회 네트워크(KEN)
세션에 앞서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María Castillo-Fernandez) 주한 유럽연합 대사는 환영사를 통해 “시민사회 단체들이 여러 이슈를 중심으로 교류하고 연대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유럽연합은 차별금지와 관련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성평등, 장애인, 그리고 이주민 인권의 핵심은 ‘차별금지 원칙’에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는 차별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며, 코로나19라는 팬더믹으로 인해 이슈가 더 부각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의 차별금지법 상황에 대해서는 “지난 15년간 한국에 있으면서 많은 진전을 목격했다. 시민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많은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얻게 된 결과다. 국회에는 차별금지법 관련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국회가 입법을 통해 또 다른 노력을 함께 해나가지 않을까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장애인 인권 세션의 사회를 맡은 이리나 아태장애포럼(APDF) 아동분과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유럽연합시민사회 네트워크(KEN)
- 유럽·한국 “장애인, 시설 분리정책으로 권리 제약… 탈시설해야”
장애인 인권을 주제로 한 세션에서는 장애인의 참정권과 탈시설에 대한 대담이 오갔다.
토론에서는 지난 8월 발표된 탈시설로드맵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은 “한국 정부가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충분한 정보나 구체적인 지원 방식이 제공되지 않아 오히려 시설과 가족들의 반발이 늘어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탈시설 정책의 이행기간을 20년으로 잡았다. 시설에 사는 장애인의 평균 나이가 39.4세이고, 거주 기간이 18.9년인 점을 고려해 볼 때 터무니없이 긴 세월이다. 최 사무국장은 “탈시설로드맵은 2041년 이후에도 신규시설 설치를 허용하고 있다. 소규모의 시설도 결국에는 시설이며, 이는 시설 소규모화 정책을 막고 있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내용과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헬렌 포털 인클루젼 유럽정책본부장 또한 이 같은 문제점에 동의하며, “장애인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시설을 통한 분리정책으로 인해 제약을 받는다. 시설 거주인들은 지역사회로부터 격리되고, 활동을 제약당하고, 같이 사는 사람들과 활동을 같이 해야 하는 강제성을 갖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유럽연합에는 탈시설 후 지역사회로의 편입을 돕기 위한 기금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유럽연합 회원국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치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성, 아동, 청소년과 같이 복합적으로 차별받는 장애인의 경우, 시설 안팎에서의 인권침해가 더욱 심각하다. 포털 유럽정책본부장은 “시설 내 지적장애여성에 대한 직·간접적인 폭력이 심각하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터부시되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어렵다”라며 유럽 내 시설 문제점을 고발했다.
아동 및 청소년의 탈시설 문제도 제기됐다. 최근 한국의 장애인거주시설 성락원에서는 청소년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지만,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립지원을 받지 못해 결국 다른 시설로 전원조치 됐다.
최 사무국장은 “유엔 지침에 따르면, 청소년이나 아동의 경우 시설이 아닌, 가정적인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대안적인 돌봄(alternative care)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러한 지원 형태가 없다 보니 시설로 결국 가게 된다. 한국에서는 장애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대안 양육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가연 기자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유럽연합시민사회 네트워크(KEN)
-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참정권 제약, 접근 가능한 지원 필요해
한국에서는 지난 2013년 7월부터 법 개정을 통해 피성년후견인의 선거권과 피선거권 제한을 폐지했다. 최 사무국장은 “한국은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법적능력 제한이 없지만, 여전히 장애인의 참정권을 위한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의 주요한 참정권 문제는 △접근 불가능한 투표소 △정보 접근성의 부재 △시설 장애인에 대한 투표권 보장 등이다. 따라서 최 사무국장은 “장애유형에 따라 참정권 접근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투표과정에서 장애인을 위한 적절한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기반 및 예산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유럽의 장애인 참정권 상황은 어떨까? 포털 유럽정책본부장은 유럽연합의 경우, 여전히 지적 장애인에 대한 참정권 제약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후견인이 있는 장애인의 경우 자동으로 참정권을 박탈당하거나, 재판을 통해 투표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지난 2014년 유럽연합 선거 때부터 프랑스, 독일, 스페인, 덴마크, 아일랜드, 슬로바키아에서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투표권 제한을 철폐했으며, 벨기에와 체코의 경우, 법 개정을 통해 피후견인의 투표권 제약을 없앴다”고 밝혔다.
그런에도 최근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는 지난 2월, ‘Strøbye v. Denmark and Rosenlind v. Denmark’ 사례를 통해, 후견인이 있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투표권 박탈이 정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가연 비마이너 기자는 “재판부는 ‘투표자에게 어느 정도의 정신적 능력 수준(level of mental skills)이 필요하다’라며, 이에 따른 제약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상당히 비장애인 중심의 판단으로,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국가에 영향을 주고 있는 유럽인권재판소가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에 매우 실망스럽다”라고 밝혔다.
이에 포털 유럽정책본부장은 재판의 결과가 다른 국가에 타격이 없기를 바란다며 “현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는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새로운 장애인 참정권 관련 전략들을 내놓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시민사회 단체는 장애인에게 더욱 접근 가능한 투표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성평등 인권 세션의 참여자들이 무대 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 ‘젠더갈등’ 부각하는 사회, 지치지 말고 성평등 교육해야
성평등을 주제로 한 세션에서는 공교육 내의 성평등 교육과 한국, 유럽연합의 젠더 현안 등을 논의했다.
황금명륜 젠더교육플랫폼효재(GET-P) 원장은 “성매매처벌, 호주제 폐지, 그리고 최근에 와서 스토킹 처벌법까지 지난 30년 동안 여성에 대한 폭력을 금지하고 성차별을 개선하는 법과 제도의 정비가 이뤄졌지만, 국민들의 의식과 관행은 매우 더디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과거 진보진영 출신의 고위직 남성들이나 정치인에 의한 성폭력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내년 3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들은 앞다퉈 여성가족부를 철폐하겠다고 하거나, ‘젠더갈등’을 부각하는 등 젠더 권력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황금명륜 원장은 “성별 권력관계가 대등하지 않은 상황에서 ‘젠더갈등’이라는 단어 사용은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하며 “한국은 그동안 역동성을 보여 왔고 분명한 진전을 보였다. 미투운동을 통한 ‘위드 유(with you)’ 운동과 같은 반성폭력 운동이 일어났던 과거가 있다. 성평등 운동과 교육을 포기하지 말고, 지치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이어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유럽에서는 성평등과 관련한 지침이 나오고 있으며, 각 국가의 입법 단계에서 여성의 안전을 더욱 증진할 수 있도록 젠더이슈를 어떻게 다룰지 논의가 활발하다. 니콜라스 스펫시디스 헤라클리온 여성연합회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는 “유럽연합에서는 여성과 아동 피해자들의 보호와 관련한 지침(Directive)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강력한 조치가 나오지 않아 아쉬운 점이 많다”라며 “유럽에서는 여성살해, 젠더 폭력 등의 문제가 상당히 여러 국가에서 만연해 있다. 모든 국가가 더 열린 자세로 솔직한 대화를 통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평등은 전 세계 200여 개의 나라가 달성하자고 약속한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5번에 해당한다. 그만큼 성평등을 위해 각 국가들과 시민사회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스펫시디스 코디네이터는 “무엇보다 새로운 세대의 학생들, 학부모, 그리고 그 선생님들이 적절한 성평등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여성 살해 문제를 줄여나갈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영역에서 일어나는 젠더기반 폭력의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보호할 수 있는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주민·난민 인권 세션의 참여자들이 무대 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 2020년 난민신청 인정률 1.1% 불과… 망명자들은 어디에
한국에서의 난민신청 인정률은 작년 기준 1.1%에 불과하다. 김영아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대표는 “한국에서 망명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은 단 한 곳뿐이다. 최대 수용 가능한 인원은 100명인데,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았다. 그렇다면 신청자들은 다 어디 가서 살고 있을지 궁금해해야 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라며 “이주민, 난민 쉼터를 만들지만 실제 난민이 갈 수 있는 시설은 많지 않다. 특히 환자, 성폭력 피해자, 미성년자, 아동과 같은 난민은 더 갈 곳이 없다. 신청 절차에서도 한국어나 영어로만 제공되고 있다. 이럴 때 시민단체가 법률 조력이 필요하지만, 실제 난민을 지원할 수 있는 시민단체는 손에 꼽는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유럽의 난민 인권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유럽연합 국경지대에서는 망명을 거부하고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조세핀 리블 유럽난민망명자위원회(ECRE) 애드보카시 국장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등의 국가들은 인도주의적인 위기에 직면했다”면서 “이런 일들이 발생한 이유는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망명 접근을 거부하도록 합법화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이러한 ‘밀어내기(push back)’를 통해 물리적으로 망명자들의 국경 접근을 거부하고 있으며, 망명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망명 분담을 유럽연합 미가입국들로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리블 국장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망명신청자들에 대한 책임을 외부화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에서는 망명시스템의 개선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이 되고 있지만, 회원국들은 유일하게 바깥 국가들에 망명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만 동일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제3국가에 개발원조를 해주면서 망명 책임을 분담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고 있다. 국제 개발 원조 시스템을 유럽연합이 악용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이가연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