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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마이너] 전국 땅값 들썩거리더니 의료급여 탈락… 잔인한 ‘부양의무자 기준’ 조회수 517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0.15

‘선천성 근병증’ 장애인, 아버지 땅 공시지가 상승으로 의료급여 탈락
생색내기·덧대기 식 의료급여 탈락 과정, 모든 닥쳐봐야 알 수 있었다
정부의 의료급여 부양의무제 폐지 ‘포기’ 선언, 의료 공공성은 어디에

 

경기도에 사는 유 아무개 씨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의료급여에서 탈락했다. 유 씨가 자택에서 본인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고, 책상에는 병원비 영수증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사진 이가연경기도에 사는 유 아무개 씨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의료급여에서 탈락했다. 유 씨가 자택에서 본인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고, 책상에는 병원비 영수증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사진 이가연

 

2018년 어느 더운 여름날, 경기도에 사는 유 아무개 씨는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집안에서 에어컨 없이 버텼다. 어느새 집안 기온이 38도를 치솟자, 유 씨의 체온도 39도까지 올랐다. 배가 너무 뜨거워진 유 씨는 동네 병원을 거쳐 큰 병원에 갔지만,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온몸에 전신마비가 오면서 장기가 마비되어 협심증까지 생겼다. 병원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알게 된 유 씨의 병명은 희귀질환인 ‘선천성 근병증’이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로 온갖 검사를 하게 되면서 병원 한 곳에서만 병원비가 3천만 원이 넘게 나왔다. 물류센터에서 전동지게차를 운전하던 유 씨의 벌이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액수였다. 몸에 마비가 온 뒤로는 더 이상 일조차 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유 씨는 2019년 6월, 지체장애 3급(등급제 폐지 전)과 ‘근로능력 없음’을 판정받으면서, 작년 4월부터 생계급여, 주거급여, 그리고 의료급여(1종) 수급자가 되었다.

 

유 씨가 지난 몇 개월동안 병원에 다니면서 받은 십 여 개의 병원비 영수증이 나란히 놓여있다. 사진 이가연유 씨가 지난 몇 개월동안 병원에 다니면서 받은 십 여 개의 병원비 영수증이 나란히 놓여있다. 사진 이가연

 

- 생색내기·덧대기 식 의료급여 탈락 과정, 모든 닥쳐봐야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유 씨는 구청으로부터 곧 의료급여가 중지될 거라는 전화를 받았다. 유 씨의 아버지가 소유한 토지가 공시지가 상승으로 부양의무자 기본재산액 기준인 1억 3600만 원(중소도시 기준)을 조금 넘었기 때문이다. 

소식을 듣자 유 씨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최근 전국의 공시지가가 많이 올랐다는 뉴스는 봤지만, 그게 곧 자신의 의료급여 탈락 사유가 될지 몰랐다. 그동안 의료급여를 받으면서 희귀질환자로서 요양급여비용 중 본인부담금이 면제되는 의료급여 산정특례도 받았다. 그런데 의료급여를 받지 않으면 삼 개월에 한 번씩 받아오는 심장약은 100만 원이 넘게 될 것이며,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입원할 때 발생할 경제적 부담에 눈앞이 아찔했다. 

의료급여에서 탈락한 유 씨는 병원에 가기 전까지 앞으로 얼마나 큰 비용을 부담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에 방문했더니 평소 2천 원 대의 병원비가 3만 원대로 늘어났다. 

그런데 몇 주 후 방문한 병원에서는 병원비가 의료급여 수급자일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왔으며 영수증에는 ‘차상위C(1종)’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알고 보니 의료급여는 받지 못하게 됐지만, 차상위 자격으로 본인부담 경감 대상자가 된 것이다. ‘차상위 본인부담경감대상자 지원사업(아래 차상위 사업)’은 희귀난치성·중증질환자가 6개월 이상 치료를 받고 있거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의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50% 이하고, 부양요건을 충족하면 요양급여비용 중 본인부담금을 경감하는 제도다.

즉, 의료급여 수급에서 탈락한 유 씨는 의료급여 산정특례자에서 ‘건강보험 지역가입자’가 되어 산정특례(요양급여 비용 중 10% 본인부담금)를 받게 되었으며, 소득이 적은 유 씨에 대해 차상위 사업이 적용되어 본인부담금을 추가로 경감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차상위 사업의 경우에도 부양의무자 기준은 존재한다. 의료급여와 달리 부양의무자의 실제 소득만 고려하며,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의 100분의 120에 해당하는 금액 미만이어야 한다. 유 씨는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에는 걸려 탈락했지만, 차상위 사업 부양의무자 기준에는 다행히(!)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난번에 ‘3만 원 대의 병원비’는 어떻게 된 일일까. 유 씨는 지자체에 수차례 물어본 결과, 의료급여가 건강보험 체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과정에서 산정특례가 적용되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는 설명을 뒤늦게서야 들었다. 유 씨 입장에선 제법 큰 돈이었지만, 돌려받을 수 없었다. 

이렇듯 유 씨의 의료급여 탈락 과정은 불투명하고 복잡했다. 자신의 소득과 재산이 아닌, 부모의 재산으로 인해 수급 탈락한 것도 억울한데, 부모의 재산이 정확히 얼마가 늘었는지 안내 받지 못했으며, 차상위 사업 대상이 된 것도 병원에 가서 청구서를 받은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의료보장이 건강보험 체계로 넘어간다는 데 건강보험료는 얼마나 나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궁금한 점을 묻기 위해 구청, 시청, 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연락해봐도 서로가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만 더 드러났다. 뭐든지 ‘닥쳐봐야’ 알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아무런 소득이 없는 유 씨의 목은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부양의무자인 아버지의 재산으로 인해 의료급여 수급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아버지의 재산에 변동이 생긴다면 유 씨의 경제상황도, 이로 인한 건강 상태도 언제든지 좌지우지될 수 있어 불안한 마음이다.  

 

유 씨가 받은 사회보장급여 통지서. 기초의료급여 변경 사유 중 '중지'에 체크 표시가 되어있고, 내용에는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 있음'에 체크 표시되어 있다. 이후 차상위 사업 대상에 선정되었지만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했다. 유 씨가 받은 사회보장급여 통지서. 기초의료급여 변경 사유 중 '중지'에 체크 표시가 되어있고, 내용에는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 있음'에 체크 표시되어 있다. 이후 차상위 사업 대상에 선정되었지만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했다. 

 

- 사각지대 해소하겠다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 않는 정부

유 씨가 차상위 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대신 차상위 사업을 통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정책을 밀고 있는 까닭도 있다. 차상위 사업은 대상자의 건강보험료와 본인부담금을 국고로 지원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 지원율(2021년 기준, 14.3%)이 법정 기준 20%에 미달하고 있어 사실상 건강보험 재정이 추가로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즉, 정부는 조세 대신 건강보험 재정으로 빈곤층에 대한 의료보장 부담을 일부 감당하고 있다. 의료급여 대상자 확대 없이, 빈곤층을 건강보험 체계로 영입하는 행정편의적 구조로 인해 수급자는 현장에서 일선 공무원들로부터 부정적 낙인을 받게 되고, 건강보험 가입자와 수급자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는 의료급여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며 ‘의료급여 본인부담 상한제’, ‘산정특례’, ‘차상위 본인부담 경감 대상자’ 등 각종 부가 사업들을 덧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제도다. 차상위 사업의 경우, 각종 할인 정책으로 의료급여 수급자와 비슷한 수준의 지원을 받게 되지만, 서류상으로는 의료급여 수급자가 아니므로 재정도 다르고 안정적이지 못하다. 이러한 현실은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어 수급자층이 현재보다 더 두터워져야 함을 증명하지만, 정부는 예산을 이유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커녕 각종 사업과 예외만 복잡하게 만들어 ‘수급자격이 안되는데 봐준다’는 식의 시혜적 태도를 취한다. 그 과정에서 빈곤층이 인간답게 살 권리는 특혜가 되고, 수급 탈락자가 겪게 될 불안은 그저 감수해야 할 몫으로 여긴다.

 

- 의료급여 부양의무제 폐지 ‘포기’ 선언, 의료 공공성은 어디에

그래서일까. 의료급여 수급자 수는 2020년 기준 152만 명으로, 전체 인구 중 3%에 불과하며, 신기하게도 1995년 이래 25년간 3% 내외로 유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약속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이행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복지부는 지난 9월 3일,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60년 만에 ‘폐지’했다고 거짓 발표했다. 실상은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고, 의료급여에서의 폐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지난 10년동안 의료급여 수급률은 3%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자료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급여통계. 재구성 이가연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지난 10년동안 의료급여 수급률은 3%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자료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급여통계. 재구성 이가연 

 

작년 10월, 정부는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1~2023)’을 통해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은 폐지가 아닌 ‘개선’ 조치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기초연금 수급 노인이 포함된 부양의무자 가구에는 부양의무자 기준 적용을 제외하기로 했다. 그러나 유 씨는 이 마저도 빗겨갔다. 유 씨의 아버지의 경우, 70세이지만 생계비를 벌기 위해 월 130만 원의 아파트 미화 일을 하고 있어 기초연금을 받지 못해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 외 별다른 조치 없이 제3차 종합계획 수립까지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면서 다음 정부로 폐지 과제를 미뤘다.

유 씨는 차상위 사업의 대상이 되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달라질 상황에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의료급여와 마찬가지로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본인부담금은 여전히 유 씨의 몫이다. 부양의무자인 아버지와의 연을 끊어야 의료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은 비급여 본인부담금을 지불할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은 아버지밖에 없다. 더욱이 자신의 빈곤함으로 인해 가족과의 연을 끊어야 하는 굴욕을 마주하기 힘들다. 

혹자는 유 씨의 아버지가 그 땅을 처분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땅을 처분하더라도 아버지의 생계비와 유 씨의 의료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먼 훗날 유 씨가 재산을 물려받을 것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로 현재의 상황을 땜질할 순 없다. 무엇보다 정부가 강조하는 ‘의료 공공성’의 관점에서 볼 때, 몸이 아파 병원에 가는 유 씨의 의료는 마땅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다. 그러나 국가 책임은 다하지 않은 채, 정부는 복지수급자에게만 끊임없이 가난의 증명을 요구한다. 그렇게 가족관계를 강제로 단절하고, 집 팔고, 땅 팔고, 차 팔아 ‘진짜 가난’을 증명할 때에야 간신히 쥐어지는 게 ‘수급 받을 권리’다. 이것은 얼마나 모욕적인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사망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를 잡겠다고 큰소리쳤다. 정부는 빈곤층을 ‘발굴’한다고 나섰지만, 문제는 발굴 ‘이후’다. 7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각지대는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을 둘러싸고 예상치 못 한 곳에서 불쑥 드러나고 있는데, 정부는 각종 덧대기식 사업으로 헛발질만 할 뿐이다.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를 잡는 흉내만 내는 게 아니란 걸 증명하려면, 빙빙 돌리지 말고 가장 큰 사각지대인 부양의무자 기준부터 법률에서 명확히 폐지해야 한다. 

 

이가연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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