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 죽은 김주영이 말한다 “사람 죽이는 종합조사표 개편하라” | 580 | ||
관리자 | 2021.10.27 | ||
장애등급제 폐지 후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종합조사표’
“활동지원서비스가 24시간이 됐으면 김주영 동지는 살아있었을 것입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김주영 동지가 살아있었다면 오늘 여기 와서 이재명 후보를 향해 직접 말했을 겁니다. 사람 죽이는 종합조사표 개편하라!”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26일 오후 3시,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종합조사표 개편을 요구하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 모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소속 장애인 50여 명은 모두 ‘김주영’을 말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보건복지부의 장애등급제 가짜폐지와 종합조사표를 규탄했을 거라 가정했다. 죽은 김주영을 대신해 말하는 것 같았다.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 수십 명의 경찰이 당사 앞을 지키고 있다. 현수막에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종합조사표 조작 규탄 기자회견, 우리는 복지부 3년의 거짓을 알고 있다’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안 돼 사람 죽었지만… ‘제도는 그대로’ 김주영 씨는 2012년 10월 26일 새벽,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후 발생한 화재에 질식사했다. 그러나 장애인 활동가들은 하나같이 그는 화재가 아닌 ‘보건복지부가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을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김 씨는 오른손과 목 위만 움직일 수 있는 최중증장애인이었지만 활동지원서비스는 고작 하루 절반인 12시간밖에 받지 못했다. 이는 당시 중증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최대 시간이었다. 따라서 그는 밤에 늘 혼자 있어야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날 밤에도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후 그는 혼자 집에 있었다. 원인 모를 화재 발생에 김 씨는 터치펜을 입에 물고 직접 119에 신고했고 소방대원은 5분 만에 도착했지만, 김 씨는 이미 숨져 있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서 현관문까지의 거리는 비장애인의 걸음으로 겨우 다섯 걸음.
최용기 한자협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최용기 회장은 “고작 다섯 걸음이었다. 활동지원 24시간이 보장됐다면, 당시 김주영 동지 옆에 활동지원인이 있었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의 죽음에 절망하고 분노한 장애인들은 정부에 장애등급제 폐지와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을 요구했다. 그 결과, 활동지원서비스 신청 자격은 기존 장애 1급에서 2급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비극은 반복됐다. 2014년 4월, 초대형 장애인거주시설 꽃동네에서 나온 송국현 씨가 자립한 지 6개월 만에 화재로 사망했다. 그는 오른쪽 팔과 다리를 쓸 수 없고 여러 장애가 중복으로 있었지만 장애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지원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장애계는 지속해서 국민연금공단에 항의하며 이의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2014년 4월 13일, 혼자 있던 사이 송 씨의 집에 불이 났다. 침대에 누워 있던 그는 있던 그 자리에서 그대로 불에 타 사망했다. 송 씨의 죽음 후, 장애계는 또다시 강력한 투쟁을 이어나갔고 활동지원 신청 자격은 2급에서 3급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이는 활동지원 신청만 가능해진 것뿐이지, 신청한다고 필요한 만큼의 서비스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장애계가 요구했던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은, 김 씨가 사망한 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폴리스 라인 앞에 있다. 이 대표 뒤로 ‘민주당’이라 적힌 간판이 보인다. 현수막에는 ‘장애등급제’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김주영 9주기… “중증장애인은 여전히 죽음 서성이며 살아야” 2019년 7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시행됐다.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한 신청 자격은 장애 3급에서 ‘모든 장애인’으로 확대되고, ‘종합조사표’라는 새로운 서비스 판정 체계가 도입됐다. 그러나 이는 전에 없던 문제들을 불러일으켰다. 종합조사표 도입 후, 기존에 활동지원 시간을 터무니없이 적게 받던 발달장애인의 활동지원시간은 확대되었으나, 그만큼 뇌병변·지체장애인의 시간은 줄어든 것이다. 장애인복지예산의 충분한 확대 없이 이뤄진 제도 개편은 장애유형 간 갈등을 조장했다. 최용기 회장은 “활동지원서비스는 중증장애인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원이다.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지원이 아니다. 이 지원이 24시간으로 보장되지 않으면 중증장애인은 늘 죽음의 문턱을 서성이며 살아야 한다”며 “하지만 종합조사표 역시 이전 장애등급제와 마찬가지로 의료적 관점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 표가 잘못됐다고, 개편돼야 한다고 수도 없이 요구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듣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최혜영 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2019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활동지원 수급자격 갱신을 신청한 5만 7370명 중 8333명(14.5%)의 서비스 시간이 삭감됐다. 월평균 22시간, 많게는 241시간까지 서비스 시간이 감소했다. 특히 장애등급제 시절 인정조사에서 1등급이었던 최중증장애인의 17.2%가 서비스 시간이 삭감됐다.
김명학 교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교장 뒤로 더불어민주당 간판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김명학 교장은 “제2의, 제3의 김주영 동지가 더는 있어선 안 된다. 그런데 종합조사표가 이대로 유지되는 한 제2, 제3의 김주영 동지가 내가 될지,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대화 나눈 다른 동지가 될지 알 수 없다”며 두려워했다. 복지부는 시간 삭감 문제에 대한 미봉책으로 ‘산정특례’란 걸 마련했다. 등급제 폐지 후 갱신조사를 받으면서 활동지원시간이 감소한 장애인을 위해 기존 서비스 시간을 3년간 보장해 주겠다는 정책이다. 3년 기한은 내년 6월이면 끝난다. 많은 최중증장애인의 생존권이 내몰리게 생겼는데 복지부는 아무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민주당 당사 앞에 모인 50여 명의 활동가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산정특례가 종료되면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추풍낙엽이 될 것이다. 장애인은 일도, 공부도 할 수 없어서 또다시 시설이나 집안에 처박혀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재명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 탈시설 자립지원 선언까지 했다. 탈시설한 장애인이 자립하려면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지원과 종합조사표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재명 후보에게 말한다. 공약 1호로 이것들을 약속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날 전장연은 △서비스지원종합조사 소득·노동 기준 마련(22년 적용 예정) △활동지원서비스 산정특례 문제 해결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종합조사표에 반영 △장애유형별·특성별 활동지원 추가시간 반영 등의 요구안을 담은 ‘서비스지원종합조사 전면 개편안’을 더불어민주당 측에 전달했다.
권달주 대표가 종합조사 개편안을 민주당 측에 전달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하민지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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