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영 민주당 국회의원 ‘공직선거법 개정안’ 대표발의 앞둬
장애계 11년 요구안 대부분 담겨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최초 명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9월 내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대표로 발의된다. 개정안에는 2010년부터 11년간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들이 요구했던 사항들이 담길 예정이다.
특히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이 이번 개정안에서 최초로 명시된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물과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수어 통역화면 제공, 신체장애인을 위한 투표소 접근성 확보 등이 의무화된다.
개정안 내용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의 주최로 6일 오후 2시에 열린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법안 토론회’에서 공개됐다.
케냐의 투표용지. 정당로고와 후보자의 사진이 들어가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이같은 그림(사진)투표용지를 도입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 케냐 독립선거관리위원회(IEBC)
- 처음으로 공직선거법에 ‘발달장애인 참정권’ 명시된다
장애인참정권은 70년이 넘는 선거 역사 속에서 무시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각장애인은 책자형 선거공보물을 보지 못해 누가 후보로 나왔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고, 수어통역 제공이 안 돼 청각장애인은 선거방송을 이해할 수 없었다. 휠체어나 목발을 이용하는 신체장애인은 투표소에 접근할 수 없어 투표를 포기해야 했다.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현행 공직선거법은 법을 근거로 장애인을 차별하는 법이다. 법이 장애인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장애인이 선거과정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한다. 결과적으로 많은 장애인이 법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 70년 선거역사 속에서 장애인이 배제됐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는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이 최초로 명시된다.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발달장애선거인을 위한 조항이 전혀 없다. 그동안 발달장애인은 선거 전 과정에서 배제돼 왔다. 알아볼 수 없는 글씨와 사진으로 가득한 선거공보물, 이해하기 어려운 선거방송, 이름과 정당명만 표기돼 있어 누가 누군지 식별하기 어려운 투표용지 등 발달장애인은 온전히 참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웠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김대범 피플퍼스트 활동가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은 주권 없는 유령이었다. 다른 장애유형과 달리 공직선거법에 제대로 명시된 적이 없다. 발달장애인은 국민으로서 주권이 없는 사람으로서 억압받아왔다. 억울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김성연 사무국장은 공직선거법에서 발달장애인이 배제된 현실을 향해 “발달장애인을 의사결정능력을 가지고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회적 편견이 법에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 설명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후보자 방송광고에서 발달장애선거인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 사용(70조) △후보자 연설방송에서 발달장애선거인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 사용(72조) △책자형 선거공보를 발달장애선거인이 이해하게 쉽게 제작(122조) △발달장애선거인이 기표하기 쉽게 하는 그림(사진) 투표용지 도입(150조) △발달장애인선거인이 이해하기 쉬운 투표안내문 제공(153조) △기표 시 발달장애선거인은 조력자가 투표보조(157조) 등이 바뀌거나 새로 생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변경 전 선거사무지침. “점자를 읽을 수 없어 혼자서 기표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과 신체 장애(지적·자폐성 장애 포함)로 자신이 혼자서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1인도 가능)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에게 투표를 보조받을 수 있음을 안내함(특수형 기표용구 교부 가능)”이라고 적혀있다. 해당 내용 중 ‘지적·자폐성 장애 포함’은 현재 지침에서 삭제되었다. 사진제공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 발달장애인만 선거사무지침서 배제… 의지 없는 중앙선관위
장애유형에 맞는 선거지원을 고민해야 할 중앙선관위의 무책임도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가로막고 있다. 시각장애인과 신체장애인은 공직선거법 157조에 따라 기표할 때 조력자의 보조를 받을 수 있다. 발달장애인도 기표 시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장애계의 문제제기 끝에 중앙선관위는 2016년 선거사무지침에 ‘지적·자폐성 장애 포함’이라는 문구를 넣어 발달장애인도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 선거사무지침이 갑자기 삭제되면서 발달장애인은 기표 시 어떤 편의제공도 받지 못하게 됐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지난 4월 9일, 중앙선관위의 이 같은 조치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27조에 따라 발달장애인을 차별한 것이라고 결정했지만 중앙선관위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유수민 중앙선관위 선거1과 서기관 또한 그간의 중앙선관위 입장을 되풀이하며 “중앙선관위는 대법원 판례와 공직선거법을 따른다. 결국 공직선거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중앙선관위는 법대로만 한다는 입장이지만, 개정안 발의를 함께 준비해 온 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중앙선관위가 시행하는 공직선거관리규칙에서 얼마든지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가진 선거인을 아무도 차별하지 않겠다는 중앙선관위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수연 법조공익모임 나우 변호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12조를 고려할 때, 장애가 있는 선거인의 의지와 선호가 존중돼야 한다. 또한 장애의 유형과 정도에 따라 필요한 투표보조인의 종류와 수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선 투표보조인을 법이 아닌 공직선거관리규칙에서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토론회에서 발표하는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 사진 최혜영 의원실 유튜브 캡처
- 다양한 장애 지닌 선거인 모두 지원하는 법으로
장애인인권운동단체 활동가들은 지난 2010년부터 지난 4월 7일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재보궐선거 때까지 인권위원에 장애인참정권 침해에 관해 수십 차례 진정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투표소 앞 턱 때문에 투표를 하지 못한 것, 청각장애인이 선거방송을 볼 수 없는 것, 시각장애인이 기표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림투표용지 도입 등 11년간 비슷한 내용으로 진정했다. 이에 관해 인권위가 여섯 번에 걸쳐 장애인참정권을 침해하는 것은 차별이며 정당한 편의제공을 해야 한다고 결정했지만 공직선거법은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이번 개정안에는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이 참정권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형 선거공보를 책자형과 동일한 내용으로 제작하고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를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한다(65조).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후보자 방송광고, 연설방송, 경력방송, 공개장소에서의 연설 및 대담, 후보자 대담 및 토론회 등 선거 관련 모든 방송에 한국수어와 자막을 의무로 제공하게 했다(70조, 72조, 73조, 79조, 81조, 82조).
휠체어나 목발을 이용하는 신체장애인이 투표소가 설치된 건물에 승강기가 없어 투표를 못 하는 일이 없도록 접근성 관련 조항 또한 변경됐다. 사전투표소나 투표소는 반드시 1층 또는 승강기 등 편의시설이 있는 곳에 설치하도록 했다(147조, 148조).
장애인거주시설 내 기표소를 설치한 후 거주인이 투표하게 하는 것은 부정투표의 위험이 많다. 기표소 관리가 모두 시설장의 권한 아래 있기 때문에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정안에서는 거주시설 내 투표가 이뤄지지 않도록 관련조항을 삭제하고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추가될 예정이다(149조).
이처럼 개정안에는 장애인참정권 보장을 위한 다양한 내용이 담겼지만 아직 과제는 남아있다.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수어통역 제공 시 발표자와 1:1 매칭으로 제공하는 문제, 점자공보물의 내용이 충실하게 점역됐는지 제대로 점검하고 비용을 지급하는 문제,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지역투표소 이용을 위해 지원하는 절차의 문제 등 좀 더 세세하게 점검되고 제공되어야하는 많은 부분들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그림투표용지의 경우 현재의 투표용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투표용지이기 때문에 어떻게 제공할지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민지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