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시설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시설 기능변환
대대적 거주시설 기능보강 사업, 시설 권한 그대로
신규 입소 금지 없이, 입소대상 기준만 강화
‘법적 용어’에서 ‘탈시설’ 배제, 제공기관 명칭에서도 ‘탈시설’ 용어 피해
정부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KTV 유튜브 영상 캡처
드디어 정부의 ‘탈시설로드맵’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장애계 우려대로 로드맵에서만 ‘탈시설’ 용어를 사용할 뿐 법적 용어에서는 이를 원천 배제한 점, 탈시설을 장애인의 기본권이 아닌 주거 선택의 문제로 규정한 점, 시설 폐쇄가 아닌 거주시설 기능 개편에 초점을 둔 점 등 많은 문제를 담고 있어 향후 장애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정부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아래 탈시설 자립지원 로드맵)’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2020년 보건복지부 거주시설 전수조사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거주시설은 1,539곳으로, 2만 9000여 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 그중 발달장애인은 80.1%를 차지하고 있다. 평균 거주기간은 18.9년이고, 평균 연령은 39.4세다. 무연고자 비율은 28%다.
- 거주시설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시설 기능변환
탈시설 자립지원 로드맵의 골자는 장애인거주시설(아래 거주시설) 신규 개소 금지와 거주인 자립생활을 위한 ‘거주시설 변환지원’이다.
정부는 2024년까지 시범사업을 거친 후,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연간 740명, 610명, 500명, 450명의 거주 장애인 자립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오는 2041년에는 시설 거주 장애인의 지역사회 전환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장애계가 10년 내 모든 시설 폐쇄를 주장해온 것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내용이다.
정부는 2024년까지 시범사업을 거친 후,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연간 740명, 610명, 500명, 450명의 거주 장애인 자립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오는 2041년에는 시설 거주 장애인의 지역사회 전환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이를 위해 정부는 시설 장애인을 대상으로 자립지원 조사를 연 1회 의무화한다. 체험홈 운영, 자립지원 시범사업 등을 통해 사전준비 단계에서 초기정착 지원까지 자립경로를 구축한다. 자립지원 시범사업에는 자립지원사 배치, 주거환경 개선 및 건강검진비 지원 등의 내용이 담긴다.
앞으로 거주시설 신규 설치가 금지된다. 현 거주시설은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하루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최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기능을 변환한다.
- 대대적 거주시설 기능보강 사업, 시설 권한 그대로
2022년부터 인권침해 시설은 우선적으로 거주인 지역사회 전환 계획을 수립한다. 대형 거주시설도 단계적으로 거주전환을 지원한다. 200인 이상 거주시설인 △충남 보령 정심원 △경기 가평 꽃동네 등 2곳과 100인 이상인 대형거주시설 23곳을 대상으로 한다.
거주시설은 자립지원 전담조직을 운영해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등 시설 밖 장애인지원기관들과 교류를 통해 지역자립생활에 대한 상담·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설 소규모화의 중심에 섰던 체험홈의 역할을 강화하는 등 시설폐쇄가 아닌 거주시설 개편에 초점을 둔 여러 정황이 발견된다.
정부는 체험홈 등 중간단계 거주공간을 활용해 충분한 사전 준비기회를 제공하고, 거주이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활동지원 등의 지역사회 서비스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체험홈은 자립생활보다는 시설 소규모화를 강화했다는 비판이 주를 이뤄 2018년부터 신규 설치 지원이 중단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로드맵에서는 체험홈 정책을 다시 강화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그뿐만 아니라 거주시설은 시설 퇴소 장애인에 대한 주거유지서비스 지원기관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현재 거주시설 4곳에 대한 시설전환 컨설팅 사업 공모를 진행 중이다.
2024년부터 단기·공동생활가정이 본래 설치 목적에 맞게 운영되도록 전반적인 시설점검 및 운영기준을 정비한다. 즉, 단기·공동생활가정을 탈시설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장애계 주장과 달리, 이번 ‘탈시설 자립지원 로드맵’ 대상에 이들 시설은 포함되지 않았다.
- 신규 입소 금지 없이 입소대상 기준만 강화
2022년부터 장애인 시설 이용결정 시 지역사례회의를 거치도록 절차를 마련하고, 24시간 전문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으로 입소대상기준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규 입소 금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오는 2024년까지 시설에 지급되는 생계급여를 본인에게 직접 지급해, 장애인 당사자가 금전 관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한다.
거주시설 형태를 일반 아파트 등 가정집 형태로 변경해 1인 1실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시설 인원·설비 기준을 독립 생활공간(unit) 단위로 마련하여 사생활이 보호되는 건물·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또, ‘장애인 거주시설 서비스 최저기준’ 등을 개선할 예정이다.
정부가 내놓은 '거주시설 운영 방식 변화 방안'. 거주시설 형태를 일반 아파트 등 가정집 형태로 변경해 1인 1실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오는 2022년부터 장애인 학대 관련 범죄가 단 한 번만 발생하더라도 시설을 즉시 폐쇄할 수 있도록 하는 ‘원스트라이크아웃(One strike-out)’ 제도를 도입해, 운영비 지원을 즉시 중단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한다.
- ‘법적 용어’에서 ‘탈시설’ 배제, 제공기관 명칭에서도 ‘탈시설’ 용어 피해
이날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는 로드맵 실행의 근거가 될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과 장애인복지법 전면개정 추진방안도 논의했다. 그러나 장애인권리보장법과 장애인복지법에는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원천 배제하고 장애인의 ‘주거 결정권’이라고 명시, 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거주 전환 및 자립에 대한 국가·지자체의 정책 수립·지원 책임을 명문화할 계획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에서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사회적 장애 개념’을 반영하여, 장애를 ‘신체적·정신적 손상’과 ‘물리적·사회적 장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또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 생활을 영위하고 자신의 주거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는 근거를 명확히 한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에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주거의 자기 결정권’을 구체화하고 탈시설·자립지원 정책 수립·지원의 내용을 규정해 국가와 지자체 책임을 명확히 한다. 또, 거주시설을 ‘장애인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변경한다는 내용도 담길 예정이다.
한편, 정부는 오는 8월에 ‘중앙장애인지역사회통합지원센터’를 열고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선도모델 마련 등 민간지원기관을 체계화한다. 장애계가 요구한 ‘중앙탈시설지원센터’ 역할을 하지만 이 또한 명칭에서 ‘탈시설’이 빠졌다.
허현덕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