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직원, 화장실에서 ‘거주인 물고문’… 피해 장애인은 “죄송해요” 절규
전수조사 중에 거주인 입에 밥 쑤셔 넣으며 “짬밥 처리” 조롱
인권위 긴급구제 외면… 피해자는 여전히 가해자들과 시설에 거주
‘거주인 물고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장애인거주시설 성락원에서 추가 학대가 확인됐다. 과거 물고문당한 피해자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로부터 긴급구제 요구를 외면당한 뒤 또다시 직원들에게 폭행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산 성락원 인권침해 진상규명 및 탈시설 권리 쟁취를 위한 대책위원회(아래 성락원대책위)는 24일, 성락원 거주인 학대 재발을 규탄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조치를 촉구하며 경산시청을 점거하고, 인권위를 찾아가 긴급구제를 거듭 촉구했다.
시설 직원, 화장실에서 ‘거주인 물고문’… 피해 장애인은 “죄송해요” 절규
경북 경산시 소재 성락원(사회복지법인 성락원)은 장애인 150여 명이 사는 초대형 장애인요양시설이다.
성락원은 작년 말, 수년째 거주인 인권유린과 후원금 갈취가 있었다는 공익제보가 나와 공론화되었다. 그러던 중 작년 봄에 이어 겨울에도 서로 다른 종사자에 의한 물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이 추가 폭로됐다. 사실상 장애인 학대가 시설 문화처럼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가해자는 지금도 시설에서 일하고 있으며, 학대 당한 거주인도 여전히 시설에 산다.
비마이너는 성락원 거주인 피해자 박 아무개 씨(가명)에 대한 물고문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입수했다. 이 영상은 물고문이 이뤄지는 화장실 문 앞에서 작년 12월에 촬영됐다. 영상에는 문 너머에서 피해자 박 씨가 엉엉 울면서 거듭 ‘죄송해요’를 외치며 크게 절규하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녹음되어 있다. 이러한 절규에도 직원 ㄱ 씨는 멈추지 않고 고문을 계속했다고 한다. 피해 장애인은 17살의 청소년이다.
과거 물고문 당한 박 씨의 얼굴에서 올해 6월 또다른 시설 직원으로부터 폭행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처와 멍이 발견됐다. 피해자 박 씨의 눈과 얼굴 곳곳에 멍과 상처투성이가 있다. 사진 제공 성락원대책위
직원들 돌아가면서 거주인 물고문… 입에 잔반 쑤셔 넣으며 ‘짬밥 처리’ 조롱도
성락원 내 학대는 직원 한 사람의 일탈이 아닌,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4월에는 또 다른 직원 ㄴ 씨가 박 씨를 물고문했다. 가해자 ㄴ 씨는 방 안 싱크대로 박 씨를 끌고 가서 머리를 수도꼭지 밑으로 밀어넣고 수돗물을 틀었다. 사건 현장엔 ㄴ 씨 외에도 3~4명의 직원들이 그 과정을 지켜보며 방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소리에 트라우마가 있을 박 씨에게 평소 시설 직원들은 물소리를 내며 박 씨를 위협했다고도 한다.
사건 후 성락원은 피해자 지원은커녕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가해 행위를 알았지만,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으며, 피해를 신고하지 않은 채 오히려 ㄴ 씨에게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편의를 보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씨는 물고문만 당한 게 아니다. 올해 6월, 박 씨의 얼굴에서 시설 직원으로부터 폭행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처와 멍이 발견됐다. 박 씨 외에도 추가 피해자 두 명이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성락원대책위는 “거주인의 얼굴에서 폭행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온갖 상처가 발견됐다. 성락원의 거주인 학대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라고 분노했다.
게다가 인권유린 사태가 공론화되어 외부 조사기관과 시민사회단체, 심지어 경찰까지 대동한 전수조사 시기에도 성락원 직원들의 학대는 지속했다. 지난 8월 10일, 경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총괄하는 전수조사가 시작했지만, 전수조사 첫날부터 직원들은 남은 음식 잔반을 거주인 입에 쑤셔 넣으며 ‘짬밥 처리’라며 조롱하고 학대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24일 오전 10시, 성락원대책위 활동가들이 경산시가 피해자를 외면해 추가피해가 발생했다고 규탄하며 경산시청 앞에 모였다. 사진 제공 성락원대책위
‘피해자 미성년자라 분리조치 어려워’… “긴급구제 외면한 인권위가 책임져야”
이번 사건은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다. 지난 5월, 성락원 물고문 학대 사건을 알게 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인권위에 피해자에 대한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인권위는 ‘가해자 ㄴ씨가 퇴사했으니 학대상황이 아니다’라며 외면했다.
성락원대책위는 “무엇보다 분노스러운 것은 이 모든 사건들이 인권유린 문제가 공론화된 후에 벌어졌다는 점”이라며 “피해자를 구제해야 할 인권위도, 성락원을 지도감독하고 인권유린 사태를 해결해야 할 경산시도 피해자 곁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성락원대책위는 “경산시는 시민사회의 요구 끝에 ‘피해당사자의 분리조치를 원칙으로 한 보호조치’를 약속했지만, 당사자가 미성년자이고 중증의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미뤘다. 결국 성락원에 남겨졌고 학대는 재발했다”고 지적했다.
24일 오전 10시, 성락원대책위는 경산시청 앞에서 경산시가 피해자를 외면해 추가 피해가 발생했다고 규탄하며 피해자들을 즉각 분리할 것을 요구했다. 비가 와서 활동가들이 우비를 쓰고 있고, 현수막에는 ‘성락원 학대 재발 규탄! 피해자 즉각분리 촉구 입장발표 기자회견’이라고 적혀있다. 사진제공 성락원대책위
현재 피해자는 여전히 성락원에 거주하고 있다. 이에 24일 오전 10시, 성락원대책위는 경산시청 앞에서 피해자들을 즉각 분리할 것을 요구하고, 경산시가 피해자를 외면해 추가 피해가 발생했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경산시에 △피해자 즉각 분리조치 △피해 회복 및 자립지원 대책 마련 △학대의 온상 성락원 폐쇄 △개인별 탈시설·자립지원계획 수립 등을 촉구했다. 이들의 압박에 경산시청 사회복지과 측은 ‘피해자에게 타 시설로 임시 전원조치 한 뒤 자립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뒤이어 성락원대책위는 오후 3시, 서울로 상경해 인권위 담당 관계자와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성락원대책위는 “지금이라도 인권위가 긴급구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루빨리 시설에 있는 피해자들을 분리하고, 자립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인권위 장애차별조사2과 관계자들은 “절차를 거친 사건 조사가 필요하다. 속도전을 내어 긴급구제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강구하겠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결정 날짜는 확답하지 않았다.
한편, 성락원대책위는 피해자에 대한 긴급구제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경산시청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성락원대책위는 24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인권위를 찾아가 장애차별조사2과 관계자들과 면담했다. 사진 이가연
이가연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