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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마이너]당사자주의, 제도화, 운동성...장애인단체 앞에 놓인 여전한 고민거리 조회수 10,33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5.22
장애인 대중운동이 태동하기 시작한 90년대 이래로 여러 장애인단체는 연대를 통해 다양한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그 이면에는 갈등과 충돌의 지점도 적지 않았다. ‘당사자주의’를 중심으로 한 장애인운동의 핵심 가치를 둘러싼 논쟁을 비롯해, 장애인운동 제도화를 요구하는 그룹과 운동성을 강조하는 그룹 간의 대립도 수년간 계속되고 있다.
 
19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진행된 한국장애학회 2017년 춘계 학술대회에서는 때로는 장애인단체 간의 갈등과 반목을 낳기도 했던 이들 쟁점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연대와 갈등 사이: 한국장애인운동사’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학회에서는 각 장애인단체 대표자들이 나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반박하는 '난상토론' 형식으로 진행되어 단체 간의 긴장감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맹목적인 당사자주의'로 인해 벌어지는 틈
 
기조 발제에 나선 유동철 동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는 장애계 주요 3단체의 탄생 배경과 그 성격을 설명하며 논의를 풀어갔다. 유 교수는 "세 단체의 분화와 단절의 중심에는 '당사자주의'가 있었다"라고 전했다.
 
유 교수는 "장총련은 재활협회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한국장애인부모회 등이 참석하고 있는 장총을 '장애인의 단체'가 아닌 '장애인을 위한 단체'라며 장애인계의 대표성을 자임했고, 장총은 장총련이 이권 다툼을 중심으로 한 이익단체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장연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비장애인 운동권 세력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조직'이라고 비판했고, 전장연은 역으로 '보수화된 장애인 단체들이 생물학적 당사자주의를 방패막이로 삼아 정책 결정과 예산을 선점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장애계 내에서도 이러한 '당사자주의'가 처음 제창되고 강조되었던 의도가 현재 장애운동에서 왜곡되는 바람에 장애계 내, 외적 연대를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상호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감히 말씀드리자면 한국장애계에서 당사자주의는 죽었다고 본다. 신체장애 중심의 패권주의에 빠져있고, 정신적장애 진영과의 연대와 협력은 거의 방치하듯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는 "현재 장애범주는 행정편의에 의해 구분해놓은 것일 뿐인데, 장애인단체들이 15개 범주에 따라 구분되고 자신들의 장애(즉 손상)만 중요하다고 외치고 있다"고 부연했다. 장애 유형에 기반하여 자원 분배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 역시 단체 간 연대를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사회적 모델에 따르면, '장애'는 손상의 정체성이 아니라, 손상에 기반을 둔 장애에 따른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손상의 정체성이 아니라 '장애'의 정체성에 기반을 두어 운동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교수는 이러한 정체성을 내재화할 때 억압받고 차별을 경험하는 다양한 집단과의 연대가 가능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제도화의 덫에 걸린 장애 운동, "장애 운동가 양성 어려운 현실"
 
한국장애운동은 지난 30년간 상당한 성과를 일궈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러한 '성과'들이 장애 운동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강경희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는 "이전에는 순수하게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로 자신을 정체화할 수 있었지만, 장애 운동의 성과로 여러 가지 장애정책이 제도화됨에 따라, 장애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점차 '직장인'과 '활동가'의 경계에 서는 경향이 발생한다"라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이곳을 '직장'으로 인식하는 활동가들이 많아짐에 따라, 운동적 성격을 지닌 활동들까지 업무의 영역에 들어가 버리곤 한다"라며 "이러한 현상에서 자유로운 단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공동대표 역시 강 대표의 지적에 동의하며 "행정적 일을 하게 되면서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 소위 말해 일의 '속도'가 생겼다"라며 "이러한 환경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은 '속도가 빠른' 비장애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존감이 낮아지고, '내가 여기서 뭘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김 대표는 "이는 결국 장애인 당사자가 활동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방해가 되어 차세대 장애인 리더 배출이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운동 방식과 내용 둘러싼 치열한 공방
 
한국장애운동이 위치한 지형 변화로 인해 마주하는 문제에는 단체들이 한목소리를 냈지만, 운동의 방식이나 내용에 있어서는 각 단체가 첨예한 대립을 드러냈다.
 
이상호 소장은 "활동보조서비스의 목표는 '자립 생활 지원'인데 왜 이 서비스를 '재활 패러다임'에 기반을 둔 장애인복지관에서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장총-장총련과 전장연 어떤 진영에서도 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자립생활센터에 비해 복지관에 압도적으로 높은 예산이 책정되고 있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장애계가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도현 비마이너 발행인은 "복지관과 센터의 예산을 기계적으로 보기보다는 장애계가 진정한 권력을 잡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라며 "꼭 제공기관이 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권력을 개별 센터들이 가져가면서 또다시 센터 간, 혹은 진영 간 갈등을 내는 것보다는 국가에서 별도의 제공 방식을 구축하면 장애인단체가 이를 '통제'할 권력을 갖는 방식도 있다"고 전했다.
 
이 소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예산의 수치로 명백히 드러난다. 서울시에서 복지관은 한 기관당 1년에 거의 25억 원씩 예산을 받지만 자립생활센터는 고작 6억 원을 서로 나누고 있는 형편 아닌가"라며 "이러한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바로잡는 것이 올곧은 가치를 세워갈 수 있는 시작점이다"라고 전했고, 김 발행인은 이에 대해 "장애계 예산은 당연히 늘어나야 하고 그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권력을 어느 단계에서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고민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운동의 방식에 대해서도 단체들은 의견 대립을 보였다. 김동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총장은 "장애 운동의 방식이 다양해졌다고 본다"라며 "단체들의 성격도 많이 바뀌었고 할 수 있는 일 역시 길 위에서의 투쟁 외에도 다양해졌다"라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장애 운동의 성과가 현장 투쟁을 포함해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김도현 발행인은 "장총과 장총련의 활동은 제도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적극적/적대적인 투쟁 활동은 배제되어 있다"라며 "또한 장애계 내에서 누구나 사회적 모델을 이야기하지만, 그 모델 자체에 내장되어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비판이라는 차원에서는 장애 해방의 문제를 사고하지 않기도 하다"라고 지적했다.
 
김 발행인은 "전장연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비판이나 변환의 차원에서 장애 해방의 문제를 사고하고, 현장 대중투쟁과 직접행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성 권력에 맞설 수 있는 '대항 권력(counter-power)'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적어도 스스로 장애인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세력이라면, 현장투쟁이 강고하고 힘을 발휘할 때, 진보적인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울려 퍼질 때, 장애 해방을 향한 동력이 창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세력의 목소리 역시 더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한진 한국장애학회장은 학회를 마무리하며 "지난 30년간 단체들이 얽히고설키며 쌓인 것이 참 많은 것 같다"라며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고, 각각의 경험과 전문성을 교환하여 협력의 가능성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이런 대화의 자리가 정례화되면 좋겠다. 학회가 그 장을 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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