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장애, 성적 지향 등에 따른 차별 금지, 장애인 자립생활 권리, 생명권 등 다양한 인간의 기본권을 명시한 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지난 대선 기간 개헌은 정치권의 화두였으나 주로 이원집정부제나 대통령 중임제 등 권력 개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개헌을 준비하기 위해 국회에 설치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또한 이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인권위는 26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토론회를 통해 기본권을 강화한 개헌안을 발표했다. 먼저 인권위의 개헌안은 1조 3항에 ‘대한민국은 인권국가를 지향하며, 모든 권력은 국민을 위하여 행사된다’라는 점을 천명했다.
인권위 개헌안은 또 15조 2항에 장애, 성적 지향, 인종, 나이, 학력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는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기존 헌법 11조보다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개정안 15조 3항은 현존하는 차별을 철폐하고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할 국가의 의무를 강조했다.
아울러 개헌안은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다수 담았다. 장애인의 경우 ‘장애인은 존엄하고 자립적인 삶을 영위할 권리와 공동체 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가지며, 모든 영역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담았다.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내용이나 ‘사회보장제도 등에 관한 고지를 받을 권리’ 등도 신설했다.
개헌안은 ‘모든 사람은 존엄과 평등에 기초하여 혼인하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있다.’는 조항도 내놓았다. 이는 ‘결혼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기존 헌법 36조와 달리 동성 결혼 등 다양한 가족 구성권으로 확대될 수 있다.
개헌안은 일부 조항에서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람’으로 대체해 국가가 국적과 무관하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천명했다. 또한 국가의 의무로 망명권을 보장하고 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도 반영했다.
이에 더해 개헌안은 최근 인권 화두를 반영한 다양한 권리들을 추가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후 안전과 생명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점을 반영해 ‘모든 사람은 생명권을 가진다’, ‘모든 사람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가진다’ 등의 조항을 신설했다.
개헌안은 ‘누구도 양심에 반하여 집총병역을 강제받지 않는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권리로 인정했고, 사형제도도 폐지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동물권에 관해서도 생명 존중 등 동물보호정책을 수립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국민투표권, 국민발안권, 국회의원 소환권, 인권에 기반을 둔 지방자치를 실현할 의무, 인권적인 기업 운영 의무, 군인에 대한 인권 보장, 공무원 노동권 확대, 대학의 자치 등 다양한 기본권 보장 내용을 담았다. 인권위의 구성, 인권위원의 지위를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인권위를 헌법기관으로 격상시킨 내용도 주목할 점이다.
다만 인권위의 개헌안이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권한을 구체화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개헌안은 기존의 헌법재판소 정당해산 조항에서 목적이 민주적인 질서에 저해되는 경우를 제외하기는 했으나, 오히려 ‘해산된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내용은 신설했다. 지난 2014년 해산된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해 이를 개헌안에 명시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 판결 자체가 민주적인 정당정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었다.
또한 개헌안이 기존 헌법처럼 사용자와 대등한 개념인 ‘노동자’ 대신에 사용자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종속적인 개념인 ‘근로자’를 사용한다는 점,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을 여전히 제약하고 있다는 점 등은 노동계의 비판이 예상된다.
한편 인권위는 7월까지 이번 개헌안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 개헌안이 본격적인 헌법 개정 과정에도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