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개인운영 장애인 거주시설을 법인으로 전환하는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8일 열릴 예정이었던 관련 토론회가 장애인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무산됐다.
28일 오후 2시, 경기도는 수원의 장애인복지종합센터 '누림센터'에서 정책 토론회를 열고, 개인운영 장애인 거주시설이 법인으로 전환되는 재산기준을 현행 2억 원에서 3~5천 만원으로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토론회 시작 전부터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경기장차연),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 등 7개 장애인 단체들은 이러한 방안이 탈시설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토론회 자체를 저지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토론회가 일방적인 정책 도입을 위한 생색내기 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개인운영 장애인 거주시설(법정시설) 법인전환 기준 완화 계획 관련 토론회'가 진행될 예정이었던 '누림센터' 2층 대회의실 앞에서 경기장차연 등 7개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계획에 반대하며 토론회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모습
"법인화는 시설에 '기능보강 사업비' 뿌려주는 도구에 불과"
경기도는 앞서 지난 2015년 4월, ‘개인운영 장애인거주시설 운영개선 및 법인설립 지원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이 계획으로 인해 자산이 1~2억만 있으면 장애인 거주시설 운영 법인 설립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법인화 기준을 3~5천만 원 수준으로 더 낮추는 계획이 또 다시 발표됐다.
경기도는 자산 구조가 열악한 개인운영시설을 체계적으로 운영해 시설 내 거주 장애인의 인권 향상을 도모하기 위함이라고 밝혔지만, 장애계는 시설 법인화가 곧 거주인의 인권향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으며, 탈시설을 가로막는 정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해왔다.
이들이 토론회를 막자 개인운영시설 협회 관계자들과 시설에 자녀를 입소시킨 부모들은 강한 반감을 내비쳤다. 공태영 한국법정시설협회 정책위원장은 “시설에서 인권문제가 발생하는 큰 이유는 바로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국가의 시설기준을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탈시설을 위해서도 법정시설(개인운영 시설)의 법인화가 꼭 필요하다. 현재 법정시설에 거주하는 분들은 시설에서 나가도 ‘시설 거주인’으로 분류가 되지 않아 자립 지원을 받기 힘든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송효정 부모연대 기획국장은 “우리는 이미 개인시설에서 법인시설로 전환한 시설 조사를 해보았다. 하지만 법인화가 된다고 그것이 곧바로 거주인 인권증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시설장 역시 ‘달라진 것은 시설 기능보강이 강화되고, 인건비가 조금 더 안정적으로 확보된 것뿐’이라고 말했다”라며 협회 관계자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송 국장은 “개인시설에서 법인시설로 전환되어 국비 지원을 받게 되더라도 시설 감사는 국가가 아닌 지자체에 여전히 맡겨져 있으므로, 법인화가 ‘체계적인 관리’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도 "정부는 지난 2002년 개인운영시설의 조건부 양성화 정책을 펴면서 15년간 엄청난 시설 보강비를 미신고시설 및 개인운영시설에 퍼부어왔다"라며 "하지만 개인운영 시설의 '기능'이 보강되었다고 거주인들의 인권과 탈시설이 보장되었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여 활동가는 "그런데도 경기도는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개인운영 시설을 제도권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탈시설'이라는 명목으로 자행하려 한다. 이는 정부의 정책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으로 대표되는 세계적 흐름에 명백이 위배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시설 거주인 부모 중 일부는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을 향해 “우리도 아이들 밖에서 데리고 살고 싶은데, 사회에서 누가 신경 쓰나. 길 하나도 제대로 안 가르쳐주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라고 시설을 없애라고 하는 거냐”라며 “허황된 이야기다. 듣기 싫다, 다 잡아 끌어내라”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러한 부모들의 반응에 대해 이경호 의정부장차연 전 대표는 “활동지원제도가 마련되기 전인 10년 전에는 모두가 나의 자립에 회의적이었다.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라며 “하지만 나는 지금 활동지원인 세 분의 지원으로 지역사회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제도가 만들어지니 이렇게 나와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발달장애인도 제도만 구축되면 얼마든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다. 언제까지고 시설에 있다면 시설 밖의 제도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한 시설 거주인의 부모가 토론회를 저지하는 장애인단체에게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내건 '탈시설', "경기도가 역행하고 있다"
한동안 고성이 오가며 대치상황이 약 한 시간가량 계속되었다. 오후 2시 20분경, 문경희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이 입장을 밝혔다. 문 위원장은 TF팀에 경기도의회 대표자로 소속되어 있으며, 지난 16일 회의에서 “거주시설을 이용하지 못해 차별받고 있는 장애인들의 권리를 위해 법 개정을 위한 촉구 건의 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 위원장은 “토론회를 막으시는 분들에게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다양한 단체의 의견을 다 듣는 것이 경기도의회의 몫이라고 생각해 열었으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토론회 진행은 무리가 있을 것 같다”라며 토론회 무산을 알렸다.
이어 문 위원장은 “(시설 내에서도) 탈시설로 가는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고 기존 법인 시설 인원도 감축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1700여 명의 중증장애인이 시설 입소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확충 민원이 많아서 진행하는 정책인데 TF에서도 나간 단체들이 이렇게 토론회를 방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문 위원장의 발언에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은 “탈시설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이자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라며 “문 위원장이 앞장서서 탈시설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반발했다.
문 위원장은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이들에게 “토론회가 개최되지는 못했지만, 토론자와 발제자는 다 모였으니 의견을 주시면 정책 마련에 반영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송효정 국장은 “경기도 내 시설 운영 체험홈 12개가 운영되면서 약 70명가량이 거쳐 갔으나 단 한 명도 자립한 사람 없었고 모두 시설로 재입소했다”라며 “그나마 자립한 3명 역시 문제시설인 향림원 출신으로, 시설로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었던 분들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송 국장은 “이런 수치를 보면 시설을 통해 단계적으로 자립이 가능하다는 문경희 의원의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송 국장은 “부모님들의 걱정에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이분들이 시설을 옹호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역사회의 지원 제도가 열악함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목소리”라며 “더이상 시설과 경기도가 부모님들을 방패막이 삼아 시설 유지를 이어가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장애인단체들은 정기열 경기도의회 의장과 면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활동가들은 탈시설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경기도와 오랫동안 탈시설 정책 논의를 해왔는데, 정책 본질에 완전히 배치되는 ‘개인 운영 시설 법인전환 기준 완화’가 탈시설 정책이라고 우기는 행태에 분노한다”라며 의회 차원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정 의장은 “말씀 잘 들었다. 지금 당장 확답을 하긴 어렵지만, 조만간 여러분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자리를 꼭 마련하겠다. 의장으로서 약속드린다”라고 답했다.
문경희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위원장이 토론회 무산을 알리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