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지진이다!” …장애인은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합니까? | 11,307 | ||
관리자 | 2016.09.21 | ||
# 시각장애인 : 나는 혼자 있었다, 지금 이곳을 빠져나갈 수가 없다
지난 12일 저녁 8시 32분, 김준형 씨는 경기도 오산의 한 사무실에 혼자 있었다. 그때, 바닥이 크게 출렁였다. 자신이 딛고 서 있는
바닥이 들렸다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본능적으로 지진임을 감지했다.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8km 지역에서 규모 5.8의 2차 지진이 발생한
날이었다.
그는 시각장애 1급의 전맹(全盲)이다. 전맹이란 완전한 시각 상실 상태를 의미한다. 다행히 그는 고등학생 때 맹학교에서 재난 대피 훈련을
받은 적 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무실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지어진 지 2~30년 된 낡은 건물이었다. 그는 8층에 있었다.
책상 밑에서 가족과 근처 지인들에게 전화했다. 그러나 전화만으로는 뚜렷한 방안이 없었다. 혼자서 섣불리 나갈 수도 없었다. 분명 그가
발밑으로 느낀 지진의 정도와 ‘눈으로 보이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을 터였다. 주변 구조물이 떨어질 수도 있고, 형광등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익숙한 장소였지만 이러한 상황에선 절대 안전하지 않았다. 비장애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구조 요청을 해야 할까. 괜히 움직였다가
떨어지는 거에 맞으면 어떡하지? 책상 아래에서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몸을 웅크리고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긴급 상황이라면 탈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릴 터였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SNS를 통해 정보를 수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더는 큰 추가 지진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그제야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같은 날 저녁, 대구에 사는 서준호 씨는 대구 중구의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는 대구장애인인권연대 대표로 최근
대구 지역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문제로 지역 장애인단체들과 대책회의를 하던 차였다. 그는 골형성부전증의 지체장애 1급으로 휠체어를
이용한다.
저녁 7시 44분, 갑자기 회의 공간이 흔들리는 느낌이 났다. 건물 바로 옆이 대구 3호선 모노레일이 지나가는 곳이니, 그 진동이 전해진
줄 알았다. 그런데 점차 강도가 세졌다. 누군가 “지진이다!”라고 외쳤다. 짧은 순간, 사람들은 숨을 멈추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서 대표의
머릿속도 하얘졌다. 흔들림이 멈추자 ‘짐 싸서 나가자’는 이와 ‘이젠 괜찮다’하는 이들의 달램이 반복되며 오갔다. 그러나 어쨌거나 남은 회의는
이어가야 했다. 10분 후, 국민안전처로부터 지진 알림 문자가 왔다.
잠시 후인 8시 32분, 2차 지진이 왔다. 위아래가 크게 흔들렸다. “빨리 짐 싸서 탈출하자.” 사람들은 급하게 회의를 마치고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있던 곳은 6층. 불안했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휠체어 탄 이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일주일 전 지진으로 서 씨는 계속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던 중 19일 또 한 번의 지진이 들이닥쳤다. 그는 오래된 아파트 7층에서
칠순 노모와 함께 산다. 노모는 몇 해 전 교통사고로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현재 알려진 지진대피방안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계단을 이용할 수 없는’ 휠체어 탄 장애인과 그의 노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안내는 없다. 국민안전처 홈페이지에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안전매뉴얼은 올라와 있지 않다. 그나마 서울소방재난본부
홈페이지에 ‘지체장애인 재난관리 매뉴얼’이 있긴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활동보조인이나 보호자와 함께 있으라고 되어 있으나 활동보조인이
24시간 지원되는 이들은 최중증장애인 중에서도 매우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설령 활동보조인이 있다고 한들 재난 상황에서 활동보조인이 장애인 한
사람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들에게 한 사람의 생명을 책임 질만큼의 책무성이 부여되는 교육이 이뤄지는 것도,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할 만큼
지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현재 활동보조인의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활동보조인이 있으면 ‘아무도 없는 것보다’ 나을 뿐,
이들이 시스템의 부재를 대체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답이 없죠.” 서 씨는 허탈한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이 말만 몇 번 되풀이했다. “심리적으로는 계속 ‘쫄고’ 있죠. 근데 대처할 방법이
전혀 없으니깐 더는 지진이 안 일어나기만 바라야죠.” 그럼에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미리 탈출이라도 할 수 있게’ 일본과 같은 예보를 해달라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다.
# 장애인가족 : 내 아이와 우리 가족은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합니까
휠체어를 이용하는 근육장애인 이민호 씨는 그 시간, 대구대 학생회관 1층에 있었다. 큰 진동이 느껴졌다. 학생회관에 있던 학생들이 놀라
소리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도 황급히 나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가 1층에 있었다는 거다. 만약 그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다른 층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무서워서 엘리베이터 이용은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언론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선 침묵하고
재난문자 늦은 것에 대해서만 반복해서 이야기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진 나고 얼마 안 돼서 한수원은 원전 정상가동이라고 하는데 전 믿음이 안 가요.
그게 더 무서워요. 공터로 대피하라고 하는데 차라리 지역 공터 위치 안내해주고, 비상식량은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국민안전처는
일본에서 전문가라도 모셔 와서 대피 방안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난해 결혼한 그는 아내와 이제 막 9개월 된 아기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아내는 경미한 뇌병변장애가 있다. 보행엔 불편이 없지만 위급할
때 아이를 안고 급하게 이동하기엔 힘들다.
“지난주(12일) 지진 발생한 다음 날 사무실 가니깐 모서리에 뒀던 컵이 깨져
있더라고요. 나도 저런 컵이 될 수 있겠다… 우린 저런 모서리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일주일에 걸쳐 두 차례나 지진을 경험한 그에게 지진은 현실적 공포로 실감됐다.
지진의 진앙지가 있는 경주. 20일 오전, 농아인협회 경주지부(아래 경주농아인협회)엔 전날 발생한 지진으로 또다시 비상이 걸렸다.
농인들은 음성언어가 아닌 시각으로 정보를 습득한다. 하지만 그 어떤 재난방송도 농인들을 위한 수화통역은 하지 않았다. TV 자막이나
핸드폰을 통해 정보를 접할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으니, 농인은 청인(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보다 정보 습득이 더딜 수밖에
없다. 또한, 수어(수화 언어)는 음성언어와 어순이 달라 수어를 모어로 쓰는 농인의 경우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결국 재난
상황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소식을 즉각적으로 알기 어렵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 되지 않으면서 불안은 증폭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농인들은 두려움에 그저 집 밖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만을 보고 상황을 판단해야 했다.
그 갑갑함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각 지역마다 운영되는 농아인협회다. 하지만 협회가 할 수 있는 것도 언론보도와 국민안전처 보도
내용을 수화로 통역하여 설명하는 것이 전부였다. 재난 지원에 관한 별도 내부 지침이 없기 때문이다. 비상 상황을 대비한 인력도 충분치 않다.
경주농아인협회에 따르면, 경주시 내 농인 인구는 2062명(통계청)이나 현재 협회엔 수화통역사와 청각장애인통역사를 포함해 총 5명만이 근무하고
있다. 만약 공영방송에서 긴급 재난 시에 자막과 수화통역을 하고, 공공기관에서도 이를 필수로 지원했다면 어땠을까.
정보는 평등하지 않고, 재난도 평등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비상용 가방을 꾸릴 때, 가방을 꾸려도 달아날 곳이 없는 사람들, 아니, 비상용
가방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정확하게 전달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대피소에 간신히 도착한들, 그곳에서 장애유형에 맞게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장애인에게만’ 그런 정보가 필요한 게 아니다. 긴급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은 누군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장애인 곁에 있는 사람들도 그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장애인 곁에 누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에게 그
정보가 필요한 것 아닐까.
세월호 참사 이후, 장애계 내에서도 장애인 재난 대피에 관한 토론회가 수차례 열렸고, 지난 7월엔 장애인 등 재난 취약 계층의 안전할
권리를 명시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다.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제1차 한국정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대한민국이 자연재해를 포함한 위급상황에 대비해 모든 유형의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형식으로 된 구체적인 전략이 없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이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 그때로부터 무엇이 나아졌는가?
“만약 주민센터에서 각 아파트나 거리에 대피 안내방송을 하더라도, 그게 지역사회에서
멀리 떨어진 장애인거주시설엔 닿을까. 아니, 안내방송을 한다 한들 대형시설에서 대피가 가능한가. 그 많은 인원에게,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시설에서의 대피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람에 대한 책임을 민간 시설에 다 떠맡긴 국가는 그들을 국민으로서 보호할 생각이나 할까. 지진이 막
일어났을 때도, 지진이 끝난 후에도 재난문자 한 통 없는 국가에 뭘 바라겠냐만. 그렇다면 시설이 위치해있는 각 지역은 그들을 주민으로서, 함께
생존해야 하는 사람으로 여길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본 적이 없으니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사회에서 분리된 삶은 구조의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시설의 안전과 보호라는 속성은 국가의 책임회피를 위해 유지될 뿐이다. 시설 안은 365일
무정부상태다.”
국가 대피 방안 매뉴얼에 장애인은 없다. 이 한 문장의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0일 오후, 장애인 대피 방안을 문의하려고 국민안전처에 수차례 전화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난 12일 이후 현재까지 400차례가 넘는 지진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 그 누구도 대피 방안과 관련해 정확한 정보 전달을 받지 못했다. 지금 선 자리가 무덤이 되지 않기 위해 장애인은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가. 그저 그것만이 알고 싶을 뿐인데 정부는 답이 없다.
기사 원문 링크 : http://www.beminor.com/detail.php?number=10132&thread=04r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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