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방관·무책임 속 ‘장애인 노예’ 꼭꼭 숨었다 | 11,195 | ||
관리자 | 2016.11.18 | ||
‘만득이’ 이후 인권침해 봇물…“쉿!” 하나로 묵인탈출 이후도 피해 ‘쭉’…사후지원 협업체계 구축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6-11-17 17:00:26
올해 언론들은 유난히 지역사회 속 ‘장애인 노예’ 사건을 연이어 다뤘다. 축사에서 19년 넘게 강제노역을 하다 구출된 일명 ‘만득이 사건’ 이후로 타이어 노예, 토마토 노예, 애호박 노예 등 장애인에 대한 각종 인권침해 사건들이 최근까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올해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그들은 마을에, 골목에 늘 존재하고 있었다. ‘갈 곳 없는 불쌍한 장애인을 몇 십년간 먹여주고 재워줬다’는 합리화로, 이웃들의 방관으로 오늘도 피해자들은 고통 속 SOS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쉿!’ 서울특별시장애인인권센터 박혜진 주임은 17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센터 3주년 기념 토론회에서는 센터 사례를 통해 본 장애인 인권 현주소를 짚었다. 센터의 3년간 접수된 인권침해 사례는 총 2000여건, 여기엔 ‘제2,3의 만득이’를 만날 수 있다. 40대 지적장애 남성 A씨의 경우 수년간 식당에서 매일 18시간씩 양파를 까거나 설거지를 하다가 식당 한편에서 쪽잠을 잤다.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급여마저도 수년간 지인이 횡령했다. 고아원에서 거주하다 초등학교 무렵 가해자의 가정에 식모로 들어온 지적장애 여성 B씨. 명품외투를 휘감은 ‘사모님’과 계절에 맞지 않는 슬리퍼 차림의 B씨의 동거는 요상스럽다. 이웃들은 ‘아이고, 불쌍한 장애인을 부잣집에서 거둬 주었구나’라면서도, ‘에이 괜히 신고했다가 시끄러워진다’며 묵인했다. 그렇게 B씨는 40년이 넘도록 ‘사모님’ 밑에서 무임금 가사노동을 했으며, 심지어 상한 음식까지 먹었다. 뇌병변장애여성 C씨 역시 고아원에서 거주하다 초등학교 무렵 부유층 가정의 식모로 일했다. 무임금 가사노동부터 노인 병수발까지 감내했다. 일한 곳은 부잣집이었지만, C씨는 오랜시간 바퀴벌레가 나오는 쪽방에서 살았다. 짧게는 5년, 길게는 40년간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례에 “왜 도망치지 않았냐”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대답은 ‘쉿’ 하나로 설명된다. 박혜진 주임은 “만나본 피해자들은 대개 상황 판단력이나 자기방어능력이 취약한 경우가 많았다. 가해자에 대한 공포 내지 탈출 이후 맞닥뜨리게 될 상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오랜 기간의 학대에 따른 무기력함,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가해자에게 트라우마적 유대를 형상한 경우 원인이 다양하다. 피해자는 도망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주임은 “피해자 중에서 주민센터 공무원이나 경찰, 관련법상의 신고의무자에게 발견되거나 의심 신고를 했던 경우가 있다. 그런데 피해자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거나 별다른 진술을 하지 않거나 확실한 물증이 있지 않아서 흐지부지 되기도 한다”며 “지역 경찰서 단위에서 캠페인 일환으로 방문점검을 실시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점검에 그치다보니 일상 속에 숨어있는 피해자를 발굴해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박 주임은 “기관들과의 유기적 협조로 피해자의 긴급 분리부터 법률지원, 복지서비스 연계까지 원활하게 진행되는 사례가 있는 반면, 유관기관에서 인권침해 여부 판단을 다르게 하거나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난항을 겪기도 한다”며 “내년부터 운영되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기존 신규 유관기관간에 업무 조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역 안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장애인을 탈출시켜 위기상황을 넘겼다. 응급조호조치, 법률지원이 들어가 사건 처리는 진행 중이고, 피해자도 쉼터에서 안정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다. 초로의 청각‧지적장애여성인 D씨에게는 20대의 지적장애인 두 딸, 그리고 딸의 어린 자녀와 함께 살았다. 딸들은 친인척에게 가족폭력과 수급비 착취를 당했으며, 폭력을 피해 자주 가출했다. 그 과정에서 신원불상의 남자들에게 성폭력을 당해 임신, 출산 경험이 있다. 어린 자녀도 성폭력 과정에서 출산된 아이로 추정된다. 이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지역 주민은 센터에 신고, 종합적인 위기 지원이 이뤄졌다. 각각 쉼터 생활, 그리고 가해자들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도 내려졌다. 재정착 또한 구청과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맡기로 해 센터에선 사례지원을 종료했다. 잘 살 것 같던 D씨 가정은 또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가해자들이 보호처분이 풀리자마자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접촉을 시작하며, 가출, 성폭력 등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결국 센터는 다시금 개입해 긴급분리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박 주임은 “재가 장애인, 특히 여성 발달장애인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다. 이들 가족이 겪은 일들은 일생에 걸친 인권침해 피해 중 어느 한 사건이 불거져 나온 것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준다”며 “위기상황 해결 후 지역사회 재정착을 목표로 지원해야 하는데 현행 쉼터나 단기보호시설은 일시적인 기능에 불과하다. 재가 장애인을 장애인시설에 입소시키는 것도 부적절하지 않냐”고 토로했다. 이어 박 주임은 “결국 피해자들에 대한 각종 치료, 자립을 위한 지원은 센터 사례 담당자의 몫이다. 센터에는 직원이 5명이고, 평균 1인당 134건의 사례를 맡는다. 기존 진행 사건들 때문에 신규 사건 개입이 지연된다”며 “지역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우선 설치단계에서 지역 내 지자체, 쉼터 등과 피해자 사후관리를 위한 협업체계를 구축해 후속지원을 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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