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500시간이던 장애인활동지원이 어느 날 0시간이 됐다. 하룻밤 만에 장애가 사라진 것이 아닌데, 단지 만 65세가 되었기 때문에
활동지원을 받지 못한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최선자 씨(지체 1급)가 18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 이유다.
국회 정문
앞에서 최 씨가 “64세 까지는 장애인이고, 65세부터는 비장애인이냐. 다 죽여라.”라고 적힌 천을 걸고 있자, 주변 사람들이 사정을 묻는다.
자초지종을 듣던 사람들이 혀를 차며 “없는 사람들 몫 빼앗아 가는 게 나라가 할 짓이냐”라며 탄식한다. 그러나 정문을 지나던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나중에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네주고 갔을 뿐, 수많은 국회 직원과 국회의원들은 무심하게 그녀의 곁을 지나치고 만다.
65세라는 이유로 0시간...“장애인 나이 들면 죽으라는 건가”
최 씨가 활동지원을 받지 못한
것은 11월부터였다. 10월까지 최 씨는 보건복지부로부터 280시간, 서울시와 은평구로부터 약 100여 시간을 받아왔다. 10월 말 최 씨는
여느 때처럼 활동지원 본인부담금을 내려고 은행에 갔지만, 제대로 납부가 되지 않았다. 전산 오류인가 싶어 몇 번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허사였다.
은평구청에 연락하고 나서야 활동지원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신 만 65세가 되었다는 이유로 활동지원서비스가
노인장기요양급여로 자동 전환됐다.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활동지원법)은 활동지원 신청 자격으로 만 6세 이상,
만 65세 미만으로 하고 있으며, 기존 활동지원 수급자였다가 만 65세 이상이 되면 장기요양급여를 받게 된다. 장기요양급여 등급 외 판정을
받으면 다시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기는 하지만, 심신의 기능으로 등급을 매기는 장기요양급여 특성상 최 씨와 같은 장애인이 등급 외 판정을 받긴
어렵고, 급여 시간도 활동지원보다 적은 편이다. 최 씨가 장기요양급여로 받을 수 있는 시간은 월 84시간이다. 이마저도 신변처리 지원이 중심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장애인활동지원과 서비스 질 면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최 씨는 근육병이 있어 손 정도만 겨우
움직일 수 있다. 식사와 용변과 같은 일상생활뿐 아니라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잘 때마다 체위를 변경하는 것도 활동보조인들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3년 전까지는 스스로 눕고 일어날 수 있었고, 숟가락질도 혼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근육병도 점점 진행됐고, 장애
정도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최 씨는 현재 있는 활동지원 시간도 빠듯하고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도리어 노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시간이 깎였다.
현재 최 씨는 지적장애가 있는 동료와 함께 살고 있다. 세수 대신 수건에 물 묻혀 눈가 밑을 닦고, 밥도
복지관에서 갖다 주는 밥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무엇보다 최 씨는 자기 한 몸 챙기기 바쁜 동료에게 신세를 진다는 것이 못내 미안하기만 하다.
그녀는 “이제껏 재미나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겨우 생명이나 유지하고 살았다. (활동지원 끊겨서) 그마저도 안 되면 그냥 죽으라는 것”이라며
“복지부든 공단이든 구청이든 장애인들은 나이 들면 시설로 가라고 하는 것 같다. 이건 고려장 아닌가.”라고 한탄했다.
“법 안 바꾸면 나 같은 처지의 사람 다 죽는다” 국회 1인 시위에 나선 장애 노인
최 씨는
11월 초부터 은평구청, 건강보험공단 은평지사, 국민연금공단 은평지사를 찾아가 상담을 하고, 이의서를 제출하고, 1인 시위를 했다.
건강보험공단은 국민연금공단에, 국민연금공단은 구청에 가보라고 그녀를 떠밀었다. 법과 제도 때문에 장기요양급여를 받지 않아야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구청 공무원들의 말에 장기요양급여 84시간마저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활동지원 수급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은평이 지역구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도 찾아가 사정을 호소했다. 보좌관들이 이리저리 알아봐주긴 했지만, 국회의원 1명만으로는 기다려달라고
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21일부터는 같은 처지에 놓인 동료들도 데려와 함께 활동지원제도 개선을 외치겠다고 했다. 최 씨는 “국회는 하루라도 빨리 법을 바꿔야
한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장애인들이 다 죽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라고 호소한다.
물론 2014년 11월, 김용익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5세 이상 장애인이 활동지원과 장기요양급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하긴 했다.
최 씨의 말대로 활동지원 연령 제한은 중증장애가 있는 노인들이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복지부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장애인 중 활동지원을 받았던 노인장기요양급여 대상자는 1542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대한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지난 5월
폐기됐고, 20대 국회에는 아직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법률안이 발의되지 않고 있다.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국회 앞 1인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하는 최 씨. 65세 이상 장애인들이 더는 활동보조를 받지 못해 '고려장 당하는' 심정을 겪지 않도록, 국회가 최 씨의
행동에 답하길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