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공간, 안락한 좌석, 최첨단 안전 시스템, 전 좌석 개별 모니터 등 비행기 일등석에 준하는 설비를 갖춘 프리미엄 고속버스. 그러나
장애인들에게는 프리미엄 버스도 탈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하위법령을 개정해 버스 운송사업자들이 일명 프리미엄 버스를 도입해 운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지난 6월 프리미엄 버스 시승식 등을 거쳐 25일부터 서울-광주 구간 하루 20회, 서울-부산 구간 하루 12회씩 정식 노선에
도입했다. 요금은 서울-광주 구간이 3만 3900원, 서울 부산 구간이 4만 4400원으로 기존 우등버스 요금보다 30% 비싸다. 단 11월
30일까지는 우등버스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좌석 수는 21석으로 기존 버스보다 넓은 공간을 확보했고, 승객들이 누워서 갈 수 있도록 160도까지 젖힐 수 있는 좌석을 도입했다.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 등 최첨단 안전 시스템을 갖추고, 좌석별 테이블, 모니터와 같은 편의시설도 완비했다.
현대자동차에 따르면 프리미엄 버스 도입 가격은 대당 2억 원 대 중반(현대 유니버스 프레스티지 기준)으로 휠체어 탑승설비를 갖춘 버스(현대
유니버스 럭셔리 장애인버스, 대당 약 1억 8000만 원)보다 비싸다. 정부가 2014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범사업 예산 16억 원은
전액 삭감하면서, 정작 장애인 탑승 차량보다 비싼 프리미엄 버스 도입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장애인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은 25일 프리미엄 버스 개통에 맞춰 오전 11시경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호남선)에서 광주로
향하는 프리미엄 버스를 탑승하고자 했다. 장애인들은 티켓을 구매했으나 계단에 막혀 버스를 타지 못했고, 곧 경찰과 터미널 직원들에게 밀려났다.
장애인들은 “왜 표를 샀는데 타지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혁봉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과연 두 다리 뻗고 개인별로 영화 보며 이동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것이 먼저인가.”라며 “버스 운송사업자들은 프리미엄 버스로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정부 또한 교통약자 이동권을 지킬 의무를
운수업체에만 떠넘기는 실정”이라고 규탄했다.
김혜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정부는 돈 없다면서 저상버스는 도입하지
않으면서, 왜 그 돈을 필요하지 않는 곳에 사용하는가”라며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타고 싶을 때 저상버스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호소했다.
김재왕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버스 운송사업자들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규정에 따라 버스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지 않는 것은 단순히 장애인을 무시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의무를 다 하지 않는 것”이라며 “국토교통부도 버스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예산 대신에 프리미엄 버스를 도입하면서, 장애인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정해진 법률도 어겼다”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