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결정한 탈시설, 그러나 서류상 퇴소는 두 달 후에 겨우 이뤄져
퇴소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당사자 의사는 간과해
수용정책으로 막강해진 시설장 권한이 근본적 문제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재활원(사회복지법인 신아원)에서 자진 퇴소한 강 아무개 씨. 스스로 시설에서 나왔지만, 신아재활원의 서류나 승인 없이 자립생활 지원을 받기 힘들다. 지역사회 정착 지원 과정에서 퇴소 장애인의 의지보다 시설의 승인이 우선인 현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스스로 결정한 탈시설, 서류상 퇴소는 두 달 후?
지난 2월 22일 강 씨는 신아재활원에서 급하게 나왔다. 그는 퇴소 하루 전인 21일, 장애여성공감 독립생활센터[숨](아래 장애여성공감)에 탈시설 의사가 담긴 편지를 썼다. 강 씨는 지난 5년간 ‘서울시 거주시설 연계사업’을 통해 장애여성공감과 교류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았다. 그런데 장애여성공감에 편지를 쓴 사실을 신아재활원 측에서 알게 되면서, 그날 바로 강 씨는 시설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그와 관련하여 시설 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슬리퍼 차림으로 나온 강 씨의 표정에서 매우 다급했던 상황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신아원에서 탈출한 강 아무개 씨가 지난 2월 26일, 신아원에 보낸 퇴소요청서. 문서에는 '원장님, 이사장님. 저 찾지 마세요. 의무실 선생님. 약챙겨 오지 마세요. 통장, 도장, 내꺼 전화 주세요. 생제과(생활재활과) 찾지마세요. 지금 잘 살아요. 21.02.26'이라고 적혀있다. 사진제공 장애여성공감
강 씨는 며칠 뒤인 26일, 자필로 퇴소요청서를 썼다. 퇴소요청서에는 ‘원장님, 이사장님. 저 찾지 마세요. 의무실 선생님. 약 챙겨 오지 마세요. 통장, 도장, 내꺼 전화 주세요. 생제과(생활재활과) 찾지 마세요. 지금 잘 살아요. 21. 02. 26.’이라고 썼다. 이처럼 강 씨의 퇴소 의지는 매우 강했다. 그러나 두 달가량 지난, 4월 19일에야 서류상 퇴소가 이뤄졌다.
그렇다 보니 지원기관에서는 강 씨의 자립지원이 녹록지 않았다. 두 달가량 서류상 퇴소처리가 되어 있지 않으니 강 씨의 몸은 시설 밖 지역사회에 있어도 여전히 서류상 ‘시설 거주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주거지 마련, 자립생활정착금 신청에서 번번이 어려움에 처했다.
- 퇴소 절차 중요시하면서 정작 장애인 의사는 간과해
강 씨의 서류상 퇴소가 두 달가량 미뤄진 데에는 신아재활원의 비협조와 송파구의 모르쇠가 원인이었다고 전해진다.
2월 22일 시설에서 나온 강 씨는 송파구에도 퇴소의지를 밝히는 자필 편지를 썼다. 그러나 송파구는 신아재활원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으며, 신아재활원에서는 계속 강 씨의 ‘퇴소 진정성’을 확인하려고 했다. 지원기관인 장애여성공감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정의로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신아재활원과 송파구가 서로 책임을 미뤘다. 강 씨가 자발적으로 시설을 나왔음에도 신아재활원에서는 계속 퇴소 의사를 확인하려했다. 자필로 작성한 퇴소서가 있음에도 강 씨의 의지와 장애여성공감의 지원 진정성을 의심했다”라며 “계속 신아재활원이 퇴소를 미룸으로써 당사자보다 시설승인이 퇴소절차에서 더 중요하다는 한계를 증명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 15일 장애여성공감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운동단체는 코로나19 집단감염에도 거주인 재입소 조치를 규탄하며 신아재활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쇠사슬과 사다리로 정문을 봉쇄했다. 사진 허현덕
강 씨의 퇴소 절차가 늦어진 이유를 신아재활원 측에 물었지만, 2주 이상 담당자가 없다는 이유로 답변을 회피했다. 끝내 들은 이야기는 “지나간 일을 왜 자꾸 들추려 하느냐”는 대응이었다. 이유를 재차 묻자 “절차대로 했을 뿐”이라며 “구체적인 이유는 장애여성공감이나 서울시, 송파구에 들으라”고 말했다.
송파구도 절차대로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진효진 송파구청 장애인복지과 주임은 “강 씨의 거주지 확인을 한 결과, 주소지가 옮겨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퇴소처리를 할 순 없다. 퇴소처리는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 ‘퇴소’ 절차에 따랐다”고 말했다. 결국 신아재활원에서 퇴소처리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21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아래 사업안내)의 퇴소 절차에는 ‘퇴소 시에는 장애인 본인의 의사를 가장 우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신아재활원과 송파구는 절차를 중요시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장애인 당사자의 의사는 간과한 듯하다.
서류상 퇴소가 늦어지면서 강 씨는 4월 23일에야 가까스로 ‘체험형 지원주택’으로 이사를 갈 수 있었다. 이사는 오롯이 강 씨와 지원기관인 장애여성공감의 몫이었다. 장애여성공감이 신아재활원에서 받은 서류는 물품인수확인증(통장, 카드), 시설퇴소동의서, 신병인수증이 전부였다.
- 인권침해로 탈시설했는데, 시설장 승인 받아라?
강 씨가 이사 후 탈시설 자립정착금(아래 자립정착금)을 받으려 할 때도 신아재활원 시설장이 발급하는 ‘자립확인서’ 제출이 문제가 됐다. 자립정착금은 탈시설한 장애인들의 지역사회 정착을 위해 지급되는 돈이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서울시는 한 명당 1300만 원을 준다. 자립정착금은 서울시 예산으로 집행되고, 각 자치구를 통해 장애인 당사자에게 지급된다.
서울시는 필수서류인 ‘자립확인서’를 꼭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강 씨는 신아재활원에 거주할 당시 인권침해를 당한 정황이 있어, 지난 3월 2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현재 진정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퇴소처리에도 협조적이지 않았던 신아재활원에 자립확인서까지 요청하는 일은 그에게 너무 가혹했다.
따라서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강 씨가 새로 이사한 자치구에서는 사정을 알고, 퇴소증명서 대신 다른 증명서류로 갈음해 긴급활동지원과 사례지원비를 지급했던 것과는 달랐다.
정의로 활동가는 “서울시는 신아재활원에 ‘자립확인서’를 대신 받아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강 씨의 자립을 지원할 때마다 신아재활원의 승인만 급급하게 기다려야 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다”라며 “이미 인권침해 피해를 호소하며 퇴소한 장애인에게 끝내 시설장 승인을 받아야 자립정착금을 주는 현 제도의 시설승인 중심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라고 짚었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강 씨는 자립정착금을 받을 수 없다. ‘체험형 지원주택’ 입주자는 자립정착금 지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명의로 임대차 계약을 맺는 ‘자가형 지원주택’과 달리, 체험형 지원주택은 충현복지관이 소유하여 운영하는 지원주택에 장애인이 3개월~1년간 머물며 지역사회 자립을 준비하는 곳이다. 따라서 서울시 자립정착금 지급에서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본인 명의의 임대차계약서가 없다. 자립정착금은 시설 퇴소로부터 6개월 이내에 신청할 수 있다. 강 씨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강 씨는 자가형 지원주택 입주 신청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장애여성공감 등 장애운동단체는 3월 4일부터 15일간 서울시청 후문에서 강00 씨의 탈시설-자립생활 지원과 신아재활원 긴급 탈시설 이행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사진 허현덕
한편, 지난 3월 8일 김선순 서울시 복지과장은 장애계와의 면담에서 강 씨의 긴급 주거지원과 개인별 지원계획을 신속하게 수립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장애여성공감에 따르면 강 씨의 퇴소·자립지원 과정에서 서울시의 지원이나 적극적인 개입은 없었다.
서울시는 현재 신아재활원 거주인에 대한 탈시설-자립생활 욕구조사를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강 씨의 긴급 탈시설 지원에 대해 묻자 안신훈 서울시 탈시설지원팀 팀장은 “강 씨에게 자립생활주택을 권유했는데, 입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애여성공감은 “당시 자립생활주택 공실은 없었고, 강 씨와 함께 한번 견학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시도 이를 모를 리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서울시가 강 씨에게 제공한 긴급 탈시설 지원은 아무것도 없다.
- 수용정책으로 막강해진 시설장의 권한이 근본적 문제
퇴소와 자립정착금 지급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는 강 씨의 탈시설-자립생활의 무한정 지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시설 밖이어도 시설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장애여성공감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장애인 수용정책과 그를 뒷받침하는 ‘시설장의 막강한 권한과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거주시설에서 거주인은 세대주인 원장과 함께 동거하는 개별 세대원의 개념이다. 특히 무연고인 경우에는 시설장에게 보호자 책임까지 주어진다. 장애여성공감은 “거주시설 운영 지침인 ‘사업안내’에 지자체의 역할을 명시하고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보니 시설장의 권한과 영향력이 막강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장애여성공감은 강 씨 퇴소 당시부터 자립지원에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되는 이용자 신상조사서, 개별일지, 이용종료 상담기록지와 같은 기본자료를 비롯해 의료 관련한 자료, 생활 및 교육·자립 관련한 자료 등 14개의 자료를 신아재활원 측에 요청했다. 그러나 신아재활원은 요청한 서류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현 제도에는 시설의 서류 제출을 강제하지 않고 있다.
강 씨 퇴소 당일 신아재활원으로부터 받은 서류는 물품인수확인증(통장, 카드), 시설퇴소동의서, 신병인수증이 전부였다. 이후 거듭된 요청 끝에 지난해 건강검진결과서와 프로그램 교육 참여 기록지 정도만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을 위해서는 기본자료, 의료관련 자료, 생활 및 교육/자립 관련 자료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복지부의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에도 관련 목록에 대한 내용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장애여성공감 자료 제공, 허현덕 재구성
정의로 활동가는 “신아재활원은 서류 요청에 계속 담당자가 부재중이라거나 혹은 메일로 서류를 보냈다는 핑계만 대다가 겨우 지난해 ‘건강검진결과서’와 ‘프로그램 교육 참여 기록지’를 보냈다. 사실상 크게 필요하지 않은 서류다. 그 외 서류는 ‘다른 거주인 사진과 정보 때문에 안 된다’, ‘왜 장애여성공감에서 자료를 요청하는 것이냐’는 답변으로 일관했다”라며 “복지부의 ‘사업안내’에서도 퇴소 후 제공되어야 할 필수적인 서류와 개인정보 처리 등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는 것도 (신아재활원의) 불성실한 대응의 원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 활동가는 “강 씨는 신아재활원에서 인권침해를 당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까지 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서울시, 송파구는 신아재활원의 승인만 기다리라고 요구한다. 이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가해를 가하는 것과 같다”라며 “강 씨가 탈시설했지만 여전히 신아재활원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수십 년간 지속된 수용정책, 이를 방조한 정부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허현덕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