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이동권 보장 약속했지만, 본예산에 반영 안 해
장애인 활동가들, 이동권 예산 반영 요구하며 지하철·버스타기 투쟁
승객들이 지하철 탄 장애인 강제로 끌어내리고 혐오발언 쏟아내기도
4일, 오후 2시 30분부터 서울장차연 등은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이동권 보장을 위한 지하철 타기 투쟁을 했다. 일부 승객들이 장애인 활동가에게 욕설을 퍼붓고 협박하자, 여성 활동가들이 서로의 팔을 붙잡아 지키고 있다. 사진 이가연
“이동권을 요구하는 투쟁이 피해라고 생각된다면, 그건 장애인이 괜히 밖으로 나와서가 아니라, 시민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져야 할 권리를 국가가 책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이 싸워주십시오!” - 고나영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장애인 활동가들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촉구했다.
4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와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서울시 곳곳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버스타기 투쟁을 했다.
지하철 이동권 요구하는 장애인에게 혐오발언 쏟아져
장애인인권단체 활동가 약 70여 명은 오후 2시부터 서울시 곳곳의 지하철과 버스에 올라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서울시청 앞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은 저상버스 100% 예산 도입을 요구하며, 버스에 오르려고 했다. 이때 경찰이 막아서면서 마찰이 빚어졌다. 버스를 못 탄 활동가들이 도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같은 시간, 서울지하철 1호선 서울시청역 상행선 구간과 4호선 혜화역을 출발해 서울역으로 향하는 하행선 구간에서도 장애인 활동가들이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지하철 두 구간이 약 1시간 이상 연착됐다.
한 중년 남성이 여성활동가를 향해 삿대질하고 있고 지하철 안에는 다른 승객들이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다. 사진 이가연
한 중년남성이 장애여성 활동가에게 지하철이 연착된 것에 대해 항의를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우리 세금으로 당신들 복지 다 해주잖아. 장애수당 받고 배불러서 이러는 거야. 이렇게 시위하면 누가 해주겠어! 병*들아!”
지하철 연착에 화가 난 승객들은 장애인 활동가를 향해 각종 혐오발언을 쏟아냈다. 일부 승객들은 휠체어를 들어 장애인 활동가를 강제로 끌어내리려 했으며, 경찰에게 물리력을 행사해 장애인들을 잡아가라고 외쳤다. 특히 여성 활동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를 본 탁신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답답한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시민들이 장애인의 상황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다는 게 안타깝다”라며 “승객들은 오늘 하루만 지장이 있을 테지만 우리는 매일 지하철을 타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면 모두가 그 권리를 누리게 된다”라고 말했다.
한 장애인 활동가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개정 수용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지하철 타기 투쟁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한 장애인 활동가가 지하철 투쟁을 하며 승객들의 폭언을 듣고 있다. 사진 이가연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선언’했지만, 예산에는 반영 안 해
이들이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이동권 보장’을 외치는 이유는 서울시가 본예산에 이동권 증진 예산 반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아래 장애인 이동권 선언)과 2017년 실천계획을 발표했다. 장애인 이동권 선언에서 △2025년까지 시내 저상버스 100% 도입 △2022년까지 서울시 지하철 1역사 1동선 승강기 100% 설치 등을 약속했다.
서울 지하철 승강기 1동선 미설치 역사 중 올해 공사할 계획인 역사는 13곳이다. 이를 위해서는 200억 규모의 예산이 따라야 하지만, 서울시 본예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서울장차연은 “예산 반영 없이는 모든 약속은 공허한 거짓일 뿐”이라며 “2015년 장애인 이동권 선언은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켜야 할 기본적인 서울시 약속”이라며 면담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서울시청 도로 앞에서 장애인들이 장애인은 탈 수 없는 버스를 막아세우자 경찰들이 달려가고 있다. 사진 이가연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이 버스를 막아서고 있고 경찰들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장애인콜택시 수도권 전역까지 운행 연계돼야
특별교통수단인 장애인콜택시가 서울시뿐 아니라 경기도·인천시 등 수도권 전역까지 운행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장애인콜택시로 다른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수차례 갈아타야 하며, 지역마다 이용 등록을 하는 번거로움까지 감수해야 한다. 현재 경기도 김포시만 예외적으로 장애인콜택시 수도권 전역 운행을 보장하고 있다. 김포에서는 장애인콜택시로 경기도, 서울, 인천 등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매일 아침 인천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권선화 우리하나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비장애인이 가는 경로로 지하철을 타려면 리프트가 있는 역에서 갈아타야한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역으로 돌아가느라 두 번을 갈아탄다”라며 “버스를 이용하려 해도 저상버스가 없어서 타지 못한다. 장애인콜택시는 제시간에 오지 않고, 인천에서 서울로 가려면 중간에 갈아타야 해서 포기했다”라며 특별교통수단이 지역 간 편차 없이 유연하게 운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버스를 타려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장애인을 저지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이동권 보장 약속 10년 기다렸는데 또 기다리라고? 장애계 분노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서울시는 지난 2015년에 10년 안에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에도 어떻게 10년을 기다리나 싶었는데, 오세훈 시장은 이제와서 2031년까지 더 기다리라고 한다”라며 “서울시는 시장이 바뀔 때마다 계속해서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다. 약속한 2025년까지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라고 외쳤다.
서울장차연은 서울시에 △2022년까지 지하철 1역사 1동선 100% 설치 예산 반영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예산 반영 △2022년까지 특별교통수단 782대 도입 약속 이행 △특별교통수단 수도권 전역 운행 보장 △마을버스에 저상버스 100% 도입 계획 발표 등을 요구했다.
한편, 서울장차연은 오후 5시 서울시 도시교통실 교통기획관과 면담을 했다. 면담 결과, 서울시는 저상버스 도입 및 특별교통수단 수도권 운영에 대해서는 오는 18일 장애계와 논의하기로 했으며, 지하철 엘리베이터 1동선이 불가능하다고 답한 4개의 역사에 대해서는 검토 완료 후 결과를 공유하기로 했다.
면담 후 활동가들은 종로1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점거하고,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약속을 지킬 것을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거듭 촉구했다.
서울장차연 등 활동가들이 종로1가 버스정류장에서 470번 버스 위에 올라가 점거했다. 활동가들이 ‘비장애인만 타는 차별버스 OUT!!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약속 이행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가연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