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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마이너] 거주인학대 ‘여주 라파엘의집’… 서울시 “15명만 탈시설 지원” 논란 조회수 92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6.23

거주장애인 때리고 묶어둔 여주 라파엘의집 학대사건
행정처분은 강남구청이 내린 ‘개선명령’이 전부
피·가해자 분리는커녕 경찰조사 결과도 공개 안 돼
서울시 탈시설 지원계획 “의사표현한 사람 15명만 지원”
장애계 “중증장애인 배제하는 행정편의적 발상”

지난해 10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여주 라파엘의집(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소재)에서 이번에는 종사자 15명이 거주장애인 7명을 폭행·학대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주 라파엘의집 현판. 사진 허현덕지난해 10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여주 라파엘의집(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소재)에서 종사자 18명이 거주장애인 8명을 폭행·학대했다. 여주 라파엘의집 현판. 사진 허현덕

여주 라파엘의집 인권침해 사건이 알려진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 서울시는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행정처분은 강남구청이 내린 ‘개선명령’뿐이며 가해자 18명 중 5명이 업무에 복귀해 피·가해자 분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4월 말 경찰수사가 끝나고 두 달이 흘렀는데 결과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학대피해자뿐 아니라 다른 거주인 모두 라파엘의집에 방치돼 있다. 더욱이 서울시가 탈시설 의사표현이 가능한 거주인 15명만 탈시설을 지원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 등 장애인권단체는 22일 오후 12시 30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무책임한 행정을 규탄하며 △라파엘의집 수사결과 공개 △시설폐쇄 및 법인 설립허가 취소 △지원주택 공급확대 △의사표현에 기반한 욕구조사 철회 △중증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수립 등을 요구했다.

강남구 조사결과 거주인 2명의 팔과 다리에 커다란 멍 자국이 발견됐다. 종사자들은 자해흔적이라고 했지만 피해 거주인의 개인관찰기록지에는 자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진 장혜영 의원실 제공강남구 조사결과 거주인 2명의 팔과 다리에 커다란 멍 자국이 발견됐다. 종사자들은 자해흔적이라고 했지만 피해 거주인의 개인관찰기록지에는 자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진 장혜영 의원실 제공
라파엘의집에는 나무로 만든 기립기가 다수의 방에 설치돼 있었다. 세 개의 까만 벨트는 몸을 묶는 용도로 달아놓았다. 한 눈에 봐도 임의로 만든 걸 알 수 있다. 사진 장혜영 의원실 제공라파엘의집에는 나무로 만든 기립기가 다수의 방에 설치돼 있었다. 세 개의 까만 벨트는 몸을 묶는 용도로 달아놓았다. 한 눈에 봐도 임의로 만든 걸 알 수 있다. 사진 장혜영 의원실 제공

- 거주장애인 8명, 종사자에게 맞아 멍들고 벽에 묶여 있었다

여주 라파엘의집(사회복지법인 하상복지재단)은 서울시가 관리·감독하는 거주시설 중에서 거주인 100명이 넘는 초대형 거주시설 5곳 중 1곳이다. 거주인 대부분이 시각·발달 중복장애인이다. 학대사건은 지난해 8월 공익제보자에 의해 알려졌다. 가해자는 시설종사자 18명, 피해자는 거주장애인 8명이다.

지난해 9월 강남구청 조사결과 거주인 2명의 팔다리에서 커다란 멍 자국이 발견됐다. 여주경찰서는 1년 치 CCTV 분석을 통해 가해종사자가 거주인의 목을 잡고 강제로 물을 먹이거나 머리, 목, 배, 어깨 등을 때린 사실을 확인했다. 테이프나 끈으로 거주인의 다리를 묶어두고 짐볼을 발로 차 거주인을 25차례 맞춘 사실 또한 드러났다. 의료적 효능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자세조절기 ‘기립기’를 불법으로 설치해 거주인을 묶어 놓기까지 했다.

가해종사자 18명은 전원 검찰에 기소됐으나 구속기소 된 사람은 2명뿐이다. 이 중 5명은 업무에 복귀했다. 학대피해를 입은 거주인 8명 중 현재 탈시설한 사람은 없고, 가해종사자와 분리조치도 안 돼 있다.

서울시청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 및 여주 라파엘의집 인권침해 사건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이라고 젹혀 있다. 사진 서울장차연서울시청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 및 여주 라파엘의집 인권침해 사건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이라고 젹혀 있다. 사진 서울장차연

- 서울시 “스스로 의사표한 가능한 15명만 탈시설 지원하겠다”

앞으로도 문제다. 서울시는 라파엘의집 거주인 중 15명만 탈시설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안신훈 서울시 장애인탈시설 팀장은 지난달 28일 서울장차연과의 면담에서 ‘나가겠다고 스스로 손 든 사람만 탈시설을 지원할 예정이다. 손들지 않으면 의사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탈시설을 지원할 수 없다. 욕구를 표현하지 않은 분은 시설에 남아있는 게 맞다. 그게 그들의 자기결정권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는 “이 같은 입장이 공무원으로서 내 소신이고 합리성”이라고 말했다.

장애계는 발달장애인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의사조력이 필요한데, 서울시의 계획은 안일하고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만약 라파엘의집 거주인 140여 명 전원이 탈시설하고 싶다고 손든다 해도, 탈시설 지원은 불가능하다. 서울시가 밝힌 15명의 탈시설 대상자 수는 지원주택 공실 15채에 끼워 맞춘 것이기 때문이다.

정민구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사람에게 집을 맞춰야지 왜 집에 사람을 맞추나. 지극히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다. 장애인 인권은 지원주택 수에 따라 일부만 보장되는 개념이 아니다. 지원주택이 필요한 사람 수를 헤아려 지원주택 수를 늘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 활동가는 “한평생 시설에서만 산 사람이 어떻게 탈시설을 꿈꿀 수 있겠나. 자립의 욕구를 가질 수 있는 경험을 한 적이 없어서 시설 바깥의 삶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중증장애인에게 충분한 정보와 경험을 제공했을 때 그들이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라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설에 살아야 한다면 그건 인권침해”라고 성토했다.

정민구 활동가가 기자회견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서울장차연정민구 활동가가 기자회견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서울장차연

- 장애계 “탈시설지원법 속히 제정돼야”

지난해 9월, 서울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7개월이 흐른 지난 4월, 가해자 18명 중 죄질이 중한 2명이 구속됐다. 나머지 16명은 불구속 상태에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수사는 4월에 끝났지만 최종수사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서울장차연은 “서울시가 개인정보를 삭제한 수사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해자가 18명이 쏟아진 중대한 학대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라파엘의집이 받은 처분은 강남구청이 내린 ‘개선명령’뿐이다.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학대와 폭행정황이 있었지만 시설폐쇄 처분까지는 내릴 수 없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서울시는 ‘동일범죄로 3년 내 세 번 이상 인권침해 사건이 적발돼야 시설폐쇄 처분이 가능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민구 활동가는 “라파엘의집이 폐쇄되려면 학대가 두 번 더 일어나길 기다려야 하나? 그런 허술한 방침으로는 시설 내 장애인 학대를 예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장애계는 장애인 탈시설지원 등에 관한 법률(아래 탈시설지원법) 필요성을 강조한다. 지난해 12월 발의된 탈시설지원법에는 인권침해 시설에 대한 적극적 제재조치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탈시설지원법에 따르면 시설문제가 불거졌을 때 정부는 시설폐쇄를 명령(41조)하고 법인 설립허가를 취소(42조)할 수 있으며 시설에 투입되는 보조금을 중단(43조)할 수 있다. 또한 인권침해 시설 거주장애인을 보호(49조)하고 즉각적인 임시조치(50조)를 이행해야 한다.

박현정 국립서울맹학교 학부모회장은 “탈시설지원법뿐 아니라 장애인권리보장법이 하루속히 제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잘 살 수 있는 지원체계가 법적으로 마련됐을 때 라파엘의집 같은 시설범죄를 더는 목격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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