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거주시설 ‘라파엘의집’ 입소자 20명 이상 확진… ‘코호트 격리’ 상태
장애계, “국제사회 권고 따라 ‘긴급 탈시설’ 추진해야” 인권위 진정

전장연 등은 29일 오후 2시 인권위 앞에서 장애인거주시설 내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코호트 격리가 아닌, ‘긴급탈시설’을 추진할 것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이가연전장연 등은 29일 오후 2시 인권위 앞에서 장애인거주시설 내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코호트 격리가 아닌, ‘긴급탈시설’을 추진할 것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이가연

장애인거주시설(아래 거주시설) ‘라파엘의집’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장애인들이 ‘긴급 탈시설’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24일,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거주시설 라파엘의집에서 20대 중증장애인 입소자(여주시 16번 환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확진자는 단독보행을 할 수 없어 휠체어를 이용하고 의사소통을 전혀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며,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채 시설에서만 지내고 있었다. 예방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시설 종사자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확진자가 발생하자 여주시는 장애인 입소자 127명, 종사자 85명, 외부강사 6명 및 외부 접촉자 13명 등 총 231명을 전수 조사했고, 이 중 장애인 입소자 20명, 종사자 9명, 외부강사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27일 기준). 여주시는 지난 25일부터 코호트 격리조치로 시설을 봉쇄했다. 그러나 지난 28일에도 무증상인 30대 중증장애인 입소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고, 확진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라파엘의 집 확진자 발생 현황(10월 28일 14:00 기준). 1팀부터 7팀까지 건물이 나눠져 있으며, 5팀 확진자동에는 입소자 6명을 비롯한 12명이 확진자가 있다. 8팀에는 입소자 14명을 비롯해 18명의 확진자가, 7팀에는 입소자 1명의 확진자가 있다. 사진제공 여주시라파엘의 집 확진자 발생 현황(10월 28일 14:00 기준). 1팀부터 7팀까지 건물이 나눠져 있으며, 5팀 확진자동에는 입소자 6명을 비롯한 12명이 확진자가 있다. 8팀에는 입소자 14명을 비롯해 18명의 확진자가, 7팀에는 입소자 1명의 확진자가 있다. 사진제공 여주시

거주시설 취약성 드러나도 ‘코호트 격리’… 시설 거주 장애인 피로감 심각해

라파엘의집뿐 아니라 집단 거주시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 초기 경북 청도대남병원의 정신장애인 폐쇄병동에서 장애인 확진자와 사망자들이 속출했으며, 이후 밀알사랑의집 등 장애인 거주시설과 요양시설·병원을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이처럼 거주시설 정책의 실패가 속속 드러났지만, 정부는 오히려 코호트 격리를 통해 시설의 문을 굳게 닫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지난 8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하자 사회복지시설 및 장애인 거주시설에 시설 휴관과 출입통제 강화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로 인해 장기간 시설에 거주하게 된 장애인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과잉행동을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했다.  

서울 소재 거주시설 ㄱ 원장은 “출입통제가 강화하면서 각종 자립생활 체험 프로그램들도 지연됐다. 공공일자리에 참여하던 분들도 일이 끊기는 일이 연속되자 그만뒀다. 지금 거주인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비장애인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외출을 통해 욕구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런 방역 통제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설 직원들은 계속 출퇴근하며 외부활동을 하지만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지내야 한다. 얼마나 답답하겠나”라고 안타까워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전 세계 돌봄시설 사망률 최대 62%… “‘긴급 탈시설’ 통해 위험한 공간에서 나와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29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반복되는 거주시설 내 코로나19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코호트 격리가 아닌, ‘긴급탈시설’을 해야 한다며 인권위에 보건복지부, 서울시, 경기도, 여주시를 상대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진정을 통해 “라파엘의집 확진자 중 거동이 불편한 하지마비 장애인이 다수로, 중증장애인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위기에 노출됐다”라며 “환기나 위생관리가 쉽지 않은 거주시설에 코호트 격리를 취하는 것은 보건적 조치가 아닌 집단 살해나 다름없다”라고 지적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방역에 더욱 취약한 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긴급하게 빼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코로나 단계가 격상할 때마다 정부와 지자체는 시설 출입 자체를 막는 코호트 격리를 한다. 그러다가 조금 상황이 풀리면 외부인이 출입하도록 하고, 외부인에 의해 감염이 발생하면 다시 코호트 격리 시키는 상황이 반복된다”라며 “정부가 거주시설 방역대책이 옳은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완전히 시설에서 나오든 임시로 나오든, 위험한 거주시설 공간에서 긴급하게 거주인을 나오게 해야 하는 게 급선무다”라고 긴급 탈시설을 촉구했다.

국제사회에서도 거주시설에서의 집단감염의 위험성을 깨닫고, 긴급 탈시설을 강조하고 있다. ‘국제 장기 돌봄 정책 네트워크(International Long Term Care Policy Network)’의 ‘돌봄시설 내 코로나19 관련 사망 현황’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전체 사망률 대비 돌봄시설 내 사망률이 최대 62%까지 달한다. 또한 거주시설에서 집단감염 상황이 심각해지자, 단라미 바샤루(Danlami Basharu)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6월 긴급 탈시설을 논의하는 국제 세미나에서 지역사회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조기퇴소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CRPD) 제11조에는 ‘(코로나19와 같은) 긴급사태가 발생할 시 당사국은 장애인을 보호하고 안전 보장을 위한 모든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구체적인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논의하고 있다. 

CRPD 협약 제19조는 ‘당사국은 장애인의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의 동참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도 규정한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정부와 지자체가 CRPD의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곧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탈시설지원법을 발의할 예정이다”라며 “왜 시설에서는 빠른 속도로 감염이 발생하는가. 바로 집단으로 살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각자의 공간에서 사는 게 아닌, 집단이 모여서 함께 숙식하고 있다. 이제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권달주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권달주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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