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기기 지원,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영향 없었다
보조기기 품목도 제한적이고, 지원 체계성도 떨어져
똑같은 보조기기 문제제기에도 정부는 요지부동
미국, 학령기 장애인에게 체계적인 보조기기 지원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의 핵심은 개인별 욕구와 사회적 환경을 고려해 맞춤형 서비스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정부가 장애등급제 폐지 1단계 과제로 내세웠던 것은 일상지원서비스다. 일상지원서비스 중에는 장애인보조기기(아래 보조기기) 개편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후 2년, 변화는 보조기기 지원 대상이 장애 1·2급에서 장애가 심한 장애인(기존 장애 3급까지 포함)으로 바뀐 것뿐이다. 보조기기 지급도 의료적 관점의 평가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은 10일 오후,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2년 이후 보조기기 정책 현황과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은 10일 오후,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2년 이후 보조기기 정책 현황과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유튜브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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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째 전동휠체어 209만 원, 이조차도 지원받기 힘들어
보행이 불가능한 지적장애인이 전동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 보조기기 지원에서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 과정은 매우 어렵다. 전동휠체어를 직접 운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으로, 전문의가 처방전을 쉽게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중복장애인이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어렵사리 처방전을 받아도 자신에게 맞는 전동휠체어를 지원받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전동휠체어 지원금은 209만 원으로, 16년째 변함이 없다. 이마저도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아니라면 167만 원으로 줄어든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전동휠체어 종류와 기능은 매우 다양하다. 3000만 원을 웃도는 고가의 제품도 있다. 그러나 그림의 떡이다. 정부는 전동휠체어 외 보조기기에 대해 ‘장애인 전동보조기기 급여제품 및 결정가격 고시’를 한다. 2020년 기준으로 고시된 전동휠체어는 34개뿐이고, 167만 원부터 1390만 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이 중 자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전동휠체어는 5개뿐이다.
이 가격은 단순히 전동휠체어에 관한 것으로 발판, 의자종류 변경, 직립형, 침대형, 컨트롤러 추가 등은 고스란히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러니 이 중 자신에 맞는 전동휠체어를 찾기란 어렵다. 결국 자비로 전동휠체어를 사든가 불편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20년 동안 전동휠체어를 이용하고 있는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1년 전 3800만 원짜리 전동휠체어를 은행대출을 받아 구매했다. 김 사무국장은 “허리 통증이 갑자기 심해져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한 달간 재활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전동휠체어를 바꾸고 허리 통증이 나아졌다”라며 “보조기기 지원은 획일적인 기준이 아닌 장애유형별, 개인별 맞춤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이 전동휠체어 신청과 이용 시 문제점을 발표했다. 사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유튜브 영상 캡처
- 보조기기 품목도 제한적이고, 체계성도 떨어져
사정은 다른 보조기기도 다르지 않다. 개인에게 필요한 보조기기가 아닌 정부가 골라놓은 품목에서만 신청할 수 있다. 복지부에 등록된 장애인보조기구 품목은 400여 종이 넘지만, 건강보험법에 따른 건강보험 적용 대상 품목은 14%에 불과하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보조기기 지원 체계는 매우 계통 없이 짜여 있고 이에 대한 예산도 충분하지 않다. 보조기기 지원사업은 보건복지부(복지부), 고용노동부(고용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국가보훈처(보훈처), 교육부 등 5개 부처에 9개로 나뉘어 시행되고 있다. 이 사업 안에서 보조기기 용어도 통일돼 있지 않을뿐더러 사업간 상호보완이 되지 않는다. 보조기기 이용자의 접근만 어렵게 만들고 있다.
최명신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사무처장은 “올해 기준 복지부는 약 3300억 원 규모이고, 고용부는 152억 원, 과기부는 33억 5000만 원, 보훈처 약 63억 원이다. 각 부처 보조기기 예산이 일개 자치구 예산 정도밖에 안 된다”라며 “각 부처별 보조기기 지원사업에 대한 전체적인 품목과 개별품목에 대한 통합서비스 체계를 구축하여 적합하고 개인별 욕구에 의한 정보공유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지원 체계도 중구난방이지만, 관련된 정확한 정보제공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보조기기센터가 전국 17곳에 있지만 장애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 보조기기센터에서는 사후관리도 이뤄지고 있지만, 100% 지자체예산으로 유지되고 있어, 수리부품 교체 비용도 다르다.
최명신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사무처장이 보조기기 지원의 문제점을 짚었다. 사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 유튜브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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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기기 지원, 똑같은 문제제기에도 정부는 요지부동
이처럼 보조기기 사업이 중구난방인 것은 현행 보조기기 관련 법에서의 문제도 있다. 장애인보조기기법에는 적용 대상자가 장애인, 노인, 국가유공자로만 제한된다. 산업재해 피해자나 교육참여를 위한 학습보조기, 보조공학기기를 필요로 하는 특수교육 대상자는 배제된다. 또한 국가의 책무를 ‘노력의무’ 정도로만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정한 지원품목도 매우 제한적이다.
앞서 밝힌 전동휠체어 지원금은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제26조 1항 별표7에서 제시하고 있다. 별표7에는 지원받을 수 있는 제품종류도 명시하고 있다.
나동환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변호사는 “시행규칙과 고시를 통해 보험급여의 범위, 방법, 절차 등에 관해 정하는 것은 장애인당사자의 기본권 실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보조기기 지원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현재 지원금액과 품목 등이 제한적이어서 문제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10여 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라며 “정부가 장애인당사자가 처한 실태를 제대로 파악한 후 그에 맞춘 시행규칙과 고시 등의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구민관 텍사스여자대학교 교수가 미국의 보조기기 지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사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유튜브 영상 캡처
- 미국, 학령기 장애인에게 체계적인 보조기기 지원
미국은 섹션504, 장애인교육법, 미국장애인법에 의해 보조기기가 지원된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건강보험인 메디케이드(Medicaid: 장애인이나 65세 미만의 저소득층 국민의료보험)와 개인보험을 적용한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21세 이하 학령기 장애인의 경우 체계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0세에서 3세까지 교육청이나 구청에서 지원받을 수 있고, 학령기 장애학생은 개별화교육위원회(IEP committee)에서 받을 수 있다. 이때 지원받은 보조기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이용할 수 있는데, 미국도 최근 제도가 바뀌었다.
성인장애인의 경우에는 메디케이드를 바탕으로 주마다 다르게 적용된다. 어떤 주에서는 100% 지원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때 미국도 보조기기 전문가 소견을 받는데, 꼭 의사가 아니어도 된다. 간호사 혹은 전문가의 의견도 가능하다.
구민관 텍사스여자대학교 교수는 “유튜브 채팅 창에 한국은 보조기기를 지원받는 데 매우 힘들다는 의견을 봤는데, 미국은 시간은 오래 걸릴 수 있겠지만 그렇게 힘든 과정은 아니다. 최근 친구가 장애판정을 받고 보조기기를 받는데, 빠르고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라며 “보조기기 지원금의 경우 한국처럼 금액을 정하지 않고 퍼센트로 정한다. 성인장애인은 적게는 80%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20%도 사회적 기부 재단 등 여러 경로를 통해서 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허현덕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