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조사 결과 월 110시간 하락? 구청·국민연금공단에 이유 묻자 ‘비공개’
재판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아냐, 활동지원 제도 투명성·알 권리 보장해야”
장애계 “정부는 부정수급 의심 말고 종합조사 근본적 개선 필요” 환영
정보공개거부처분 소송에서 승소한 서기현 소장. 지난 10월 9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주최한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에 따른 종합조사 시행 2년간의 문제점과 제3차 종합조사(소득·고용) 적용 방향을 짚는 정책토론회에서 종합조사표의 문제점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이가연
그동안 장애인 당사자가 활동지원 시간을 대폭 삭감 당해 그 이유를 물어도 구청과 국민연금공단(아래 공단)은 ‘정보공개 불가’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서울행정법원이 구청과 공단의 정보공개거부처분을 모두 취소하라고 판결해, 앞으로 활동지원 종합조사 결과의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종합조사 결과 월 110시간 하락… 이유 묻자 ‘비공개’
지난 2019년 7월,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 지원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됐다. 이에 따라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의 급여량 판정도구가 인정조사에서 종합조사로 변경됐다.
사지마비 뇌병변 장애인 서기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소장은 지난 2019년, 바뀐 종합조사표에 따라 활동지원 갱신조사를 받았다. 그 결과 활동지원서비스가 약 월 110시간(하루 3시간 30분) 삭감됐다. 그러나 서 소장이 받은 ‘사회보장급여 변경통지서’에는 결과(활동지원등급 6구간)만 표시되어 있을 뿐, 이유는 나와 있지 않았다. 이에 서 소장은 도봉구청과 공단에 무슨 이유로 점수가 낮게 나와 구간이 하락했는지 알고자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두 기관 모두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5호를 근거로 ‘비공개’ 통지했다.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5호는 ‘감사·감독·검사·시험·규제·입찰계약·기술개발·인사관리에 관한 사항이나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를 비공개 대상 정보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4월 29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종합조사 결과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비공개 통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여자들 앞에 '서비스지원종합조사 결과 정보공개청구 비공개 통지에 대한 행정소송 청구 기자회견'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사진 이가연
- 재판부 “활동지원 제도 운영의 투명성 확보하고 ‘알 권리’ 보장해야”
이에 서 소장은 4월 30일, 공단과 도봉구청의 행정처분에 대한 자신의 ‘알 권리’가 침해되었으며, 비공개 통지처분이 잘못되었다며 행정소송을 청구했다.
그리고 지난 12일, 서울행정법원 제6부(재판장 이주영)는 서 소장이 청구한 종합조사 결과의 구체적 내용이 정보공개법상 비공개대상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도봉구청장과 공단이 내린 정보공개거부처분을 모두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서 소장이 청구한 종합조사 결과는 이미 판단이 끝난 처분이기에 공개가능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종합조사의 결과는 원고의 활동지원수급자격을 결정하기 위해 실시된 것이며, 이 사건 정보는 그 조사 결과이다. 피고 도봉구청장이 이미 활동지원등급 변경처분을 했으므로, 이 사건은 더 이상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 ‘왜 알려주지 않느냐’는 질문에 부정수급 의심한 구청과 국민연금공단
도봉구청과 공단은 재판 변론 중 개인정보를 왜 알려주지 않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종합조사 세부결과를 바탕으로 장애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사원에게 진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여전히 부정수급을 의심하며 활동지원 서비스를 장애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닌, 시혜적인 정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의 시혜적인 관점과 달리, 구체적인 종합조사 결과가 공개되더라도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해당 정보는 종합조사 결과를 점수화하여 단순히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개별 조사항목에 대한 조사인의 발언이나 구체적 평가, 주관적 의견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정보가 공개된다고 하여 그 자체로 조사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이나 조사의 공정한 수행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정보가 공개되더라도 원고의 항목별 결과 점수만이 공개되어, 향후 제3자에 의해 악용될 개연성도 없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활동지원 제도 운영의 투명성 확보를 강조했다. 재판부는 “설혹 정보가 공개되어 개별 점수 부여를 가지고 민원이나 분쟁이 발생한다 해도, 그것이 종합조사 업무의 객관성, 투명성, 공정성을 저해할 정도라고는 보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이 사건 정보에 대한 공개를 통해 종합조사가 충실하고 공정하게 수행되었는지에 대한 의혹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향후 활동지원등급 결정이나 종합조사 제도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도 공개할 필요성이 충분하다”며 쐐기를 박았다.
지난 4월 29일, 기자회견에 참여한 한 활동가가 ‘알 권리 침해하지 말고 즉각 정보 공개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 그동안 이의신청해도 정보 없어 ‘불이익’… “종합조사 근본적 개선 필요”
서 소장의 사례처럼, 장애등급제 폐지 후 종합조사를 받은 장애인 중 이전보다 등급 구간 하락으로 활동지원 시간이 감소해 이의신청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보건복지부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장애등급제 폐지(2019년 7월) 후 지난 6월까지 이의신청 4463건 중 이의가 인정된 경우는 49%에 그친다.
이처럼 그동안 장애인 당사자들은 구청과 공단이 종합조사 세부 점수표를 공개하지 않아, 이의신청하기에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은 이번 판결의 승소 소식을 알리며, “원고와 같이 활동지원시간이 삭감된 장애인들은 기본적인 생활조차 위협받는 상황이다. 이에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다투고자 해도, 조사결과 정보를 전혀 알 수 없어 이의신청하기가 어려웠다. 종합조사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지, 서비스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구청과 공단은 부정수급을 의심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서비스를 받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해 서 소장은 16일 비마이너와의 전화통화에서 “법원이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다. 그동안 공무원들이 정보공개를 꺼려했는데, 행정소송으로나마 해결되어 다행이다. 앞으로 종합조사 결과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는 많은 장애인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판결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활동지원 구간 하락자를 대상으로 산정특례 제도를 마련해 3년 간 최초 1회, 이전 급여를 보전해주는 임시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서 소장 또한 산정특례를 받았지만, 내년부터는 종료되어 다시 종합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이의 제기를 통해 활동지원 구간이 큰 폭으로 하락한 이유를 파악하고, 산정특례가 끝난 후의 상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서 소장은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3년의 산정특례 이후에는 대책이 없다. 잘못된 종합조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가연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