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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마이너] “아들 탈시설 후, 저도 제대로 된 사회생활합니다” 조회수 70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1.25

정부 탈시설 정책 발표에 일부 장애부모 ‘탈시설 반대’ 집회
탈시설 당사자와 가족들 증언대회 열어 “심정 이해한다, 그러나…”
탈시설 가족이기도 한 장혜영 의원 “탈시설은 인간의 기본 조건”

 

지난 8월 정부 탈시설로드맵 발표 이후, 탈시설은 하나의 논란거리가 된 듯하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등 중증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일부 부모는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상복을 입고 “탈시설은 사형선고”라며 탈시설 반대 집회를 열었다. 8월 17일에는 김부겸 국무총리를 만나 시설 폐쇄 및 신규 설치 제한 등에 대한 강력한 반대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일부 부모의 탈시설 반대 배경에는 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이 가족에게 온전히 떠맡겨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는 지역사회 복지서비스 부족이라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러나 탈시설은 장애인에 대한 돌봄을 가정에 떠맡기는 것도, 장애인을 지역사회에 방치하는 것도 아니다. 시설수용 정책이라는 장애인 복지 패러다임을 끝내고, 장애인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촘촘한 복지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때로 이는 ‘아직 지역사회 복지체계가 부족하니 탈시설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삶은 ‘나중’으로 지연될 수 없다. 부족한 복지체계는 시급히 채워나가야 할 영역이지, 탈시설의 반대 이유가 돼선 안 된다고 장애계는 주장한다. 19일 오후 2시, 국회 제8간담회에서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등의 주최로 탈시설 당사자와 그의 가족들이 탈시설 이후의 삶을 증언하는 자리를 열었다. 이날 증언대회 제목은 “분리가 아닌 공존의 시대로, 탈시설”이었다.

중증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탈시설에 반대하는 부모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공감을 표하면서도 “그럼에도 탈시설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했다.

 

임현주 씨가 증언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장혜영의원실임현주 씨가 증언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장혜영의원실

 

- “아들 탈시설 후, 저도 제대로 된 사회생활 할 수 있게 됐어요”   

임현주 씨의 아들은 지난해 5월, 시설에서 산 지 9년 만에 탈시설했다. 그의 아들은 중증발달장애인이다. “아들이 고3 졸업하는 날, 내 인생은 끝이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달고 살았던 임 씨는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좋은 시설’을 수소문해 아들을 맡겼다. 도심 한가운데 새로 지어진 장애인거주시설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그곳에서 몸무게가 28kg밖에 나가지 않을 정도로 야위어갔고, 시설 안에선 활동량이 적으니 점점 걷지 못하고 자폐 성향이 생겼다. 시설에서는 한 명의 생활교사가 여러 명을 돌봐야 하니 약물을 과다 투약해 일상 대부분을 누워 지내게 했다.

하지만 임 씨는 애써 못 본 척했다. 20년간 아들을 키우며 그를 돌본다는 게 얼마나 큰 어려움인지 알기에, 되레 ‘선생님이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 돌보려면 얼마나 힘들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들을 시설에 두는 것이 임 씨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고도 생각했다. 시설 아닌 다른 공간에서 아들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탈시설단체를 만나게 되면서 아들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오기로 결심했다. 시설에서 중증발달장애인인 그의 아들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며 강제퇴소 시키는 등 갑질과 방임에 화가 난 상태였다.

현재 임 씨의 아들은 지원주택에서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 나들이나 산책은 더 이상 시설 일과표의 프로그램이 아니다. 일상이다.

어머니 임 씨 또한 자신의 삶을 산다. 그는 생에 처음으로 주 5일, 8시간 근무형태를 갖춘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지난달이 첫 월급날이었다. 그전까지는 주로 야간에 일했다. 시설에서 언제 연락 올지 몰라 노심초사하며 낮에 일정을 비워놔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 임 씨는 치매 어르신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임 씨는 “아이가 시설에서 나와 좋아지는 걸 보니 시설의 문제점이 너무 잘 보인다. 아들이 있던 시설엔 경증장애인도 많았지만 그들이 점점 퇴행하는 게 보였다”면서 “어떻게 지원하느냐에 따라 장애인의 삶은 달라진다. 탈시설 후, 다양한 지원방식을 고민하는 지원자로 인해 아들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탈시설에 반대하는 부모는 이걸 모르고, 지역사회에서 자립한 자녀 모습을 상상할 수 없으니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임 씨는 “탈시설은 부모의 부담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아이가 시설에 있을 때 내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늘 불편했다. 요즘은 내가 아들 집에 놀러 가기도 하며, 우리 딸도 ‘부모님 돌아가시면 내가 오빠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전했다.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중증중복장애인위원회 위원장도 탈시설에 반대하는 부모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26세인 김 위원장의 딸은 뇌병변장애 1급, 지적장애 1급의 중증중복장애인으로 간질 지속 상태의 희귀난치병도 있다.

김 위원장은 “탈시설에 반대하는 부모 마음이 백번 이해된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꼼꼼하게 보완돼야 할 부분이지, 정부가 부모의 반대 입장을 부추기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경인 활동가가 증언대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사진 장혜영의원실박경인 활동가가 증언대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사진 장혜영의원실

 

- ‘의지할 수 있는 환경’ 있다면 발달장애인도 충분히 자립 가능

탈시설은 물리적인 거주공간만 옮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역사회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다른 이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삶의 총체적인 변화를 포함한다. 이는 시설에 사는 동안 끊어졌던 지역사회와의 관계망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부족한 자립지원 체계로 첫 번째 자립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전세 대출부터 집 계약, 가전제품 구매, 각종 요금납부, 돈 관리 등에서부터 하루를 채울 여러 사회적 관계가 필요했으나 당시 이를 지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살았던 그룹홈 직원은 지원은커녕 계약서를 찢는 등 훼방만 놓을 뿐이었다.

결국 박 활동가는 지난해 3월, 정신병원에 다시 입원했다가 올해 7월에야 자립생활에 재도전했다. 이제 곧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오는 12월부터는 주거코치 지원도 받는다. 그리고 피플퍼스트서울센터가 그의 곁을 함께하고 있다.

박 활동가는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센터 동료가 한 명씩 우리 집에서 함께 자면서 지난 4개월을 보냈다. 고맙기도 하고 혼자 있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면서 “나와 같은 발달장애인은 자립해도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많지 않다. 서로 의지하고 해결해나가는 환경이 있다면 많은 발달장애인이 저처럼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이 많이 만들어지길 희망한다면서 시설에 있는 친구를 향해 “시설에서 나와서 같이 살자. 나 너무 심심하다”고 전했다.

 

축사하는 장혜영 의원. 사진 장혜영의원실축사하는 장혜영 의원. 사진 장혜영의원실

 

- “일부 사람만 인간답게 살아선 안 돼, 탈시설은 인간의 기본 조건”

이처럼 탈시설 과정에서는 다양한 사람의 조력이 필요하다. 탈시설-자립지원을 조력하는 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또한 장애인과 함께 탈시설의 과정을 겪어나가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장애인거주시설 ‘향유의집’에서 8년간 탈시설 업무를 하고 현재 프리웰지원주택센터에서 근무하는 김민재 팀장은 조력자의 입장에서 탈시설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제언했다.

그는 무엇보다 시급히 개선돼야 할 제도로 비장애인 중심의 의료체계를 꼽았다. 중증장애인일수록 다양한 의료서비스가 필요하지만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종합병원, 대학병원의 의료체계 시스템 개선과 의료약자에 대한 인식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활동지원사의 처우와 역량 강화, 중증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공공일자리, 입주자 중심의 지원주택서비스 평가체계 도입 등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 8월, 정부 탈시설로드맵 발표 후 탈시설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지원을 총괄할 중앙장애인지역사회통합지원센터(아래 통합지원센터)도 개소했다. 강정배 통합지원센터장은 센터의 역할을 소개하면서 “거주시설 지원 사례를 계속 청취하다 보면 ‘자립 안 돼’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나 자립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공존의 의미”라며 자립이라는 단어에 갇히지 말 것을 주문했다.

또한 의사 표현 확인이 어려운 최중증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이 결정권을 함께 지원해야 하며 별도의 지원체계를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 탈시설 욕구조사보다는 지역사회가 전체적으로 전환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중심을 둔 자립지원 조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증언대회를 개최한 장혜영 의원은 “탈시설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탈시설은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인간의 기본 조건”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 또한 탈시설한 지 4년 된 발달장애인 동생이 있다.

장 의원은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도 인간답게 살고, 다른 시민도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탈시설이다. 일부 사람만 인간답게 살아서는 안 된다”면서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모두 인간답게 잘 살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탈시설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탈시설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저는 낙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혜민·하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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