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발달장애인·가족의 죽음에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촉구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 내년도 예산, 계획 절반도 못 미쳐
발달장애인 당사자 “내 삶을 내가 책임지고 사는 환경 만들어 달라”
부모연대는 25일, 이룸센터 농성장 앞에서 발달장애인 하루 최대 24시간 지원체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박준 문화노동자가 노래를 하고 있고, 부모연대 활동가들이 손피켓을 펼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사망사건이 연일 끊이지 않는 가운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활동지원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 올해에도 연이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죽음
지난 14일,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발달장애인 자녀와 노모를 부양하던 40대 남성이 두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다.
발달장애인의 사망사건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도 발생했다. 지난 6월, 전라남도 화순군 장애인거주시설 동산원에서 청소년 발달장애인 김윤호 씨가 온몸에 멍이 든 채 사망했다. 학대 정황이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김 씨의 사망 원인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시설도 폐쇄되지 않자,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에서 사건이 뒤늦게 재조명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8월, 인천 연수구의 한 장애인 주간보호시설에서는 발달장애인 이용자에게 직원이 억지로 음식을 먹여 질식사하는 사건이 발생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처럼 시설과 지역사회를 막론하고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죽음이 연이어 이어지자 25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는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고, 발달장애인 정책 예산을 쟁취하기 위한 단식 투쟁을 결의했다. 단식에 돌입하는 사람은 총 7명으로 윤종술 부모연대 회장, 민용순 부모연대 수석부회장, 이정근 부모연대 부회장, 탁미선 부모연대 부회장, 이해경 부모연대 부회장, 조영실 부모연대 인천지부장, 배선이 부모연대 창원지회장이다.
김유선 부모연대 광주지부장은 작년 6월,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를 추모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고 했는데,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어서 끝내 영영 이별하게 된 언니. 동료의 뜻하지 않은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보듬어가며 남겨진 자식들을 시설로, 정신병원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 자식들이 엄마만이 가득한 세상이 아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죽음을 추모하는 단상위에 촛불과 하얀색 국화, 그리고 이름 없는 액자 사진이 놓여있다. 사진 이가연
-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 내년도 예산, 계획의 절반도 못 미쳐
지난 2018년, 정부는 ‘제1차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대책에 따르면, 복지부, 교육부, 노동부 등 총 3개의 부처가 공동으로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에 따라 과제를 책임져야 한다.
정부는 종합대책을 통해 신규사업인 성인발달장애인을 위한 주간활동서비스는 오는 2022년까지 총 1만 7천 명, 방과 후 활동지원서비스는 총 2만 2천 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두 사업의 대상자는 각각 1만 명씩으로 기존 계획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예산이 책정됐다.
단식을 결의한 부모연대 활동가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이가연
- 정부·국회에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촉구
이처럼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어려움은 언론을 통해 자주 보도되지만 제대로 된 실태조사 한 번 이뤄진 적이 없다. 따라서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생활실태를 전수조사하여 발달장애인 지원체계를 재구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현재 발달장애인 지원체계는 ‘정부 주도’가 아닌 ‘가족 주도’ 지원체계”라고 비판하며, 전수조사 시 반드시 발달장애인 자립욕구조사를 실시하여 발달장애인이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자립할 수 있는 단계적 지원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또한 지원주택 도입과 주간활동서비스를 비롯한 낮 시간 이용 가능한 서비스의 확대도 요구했다. 부모연대는 주간활동서비스와 활동지원서비스의 확대를 통해 발달장애인의 낮 시간 활동을 보장하면서, 부족한 밤 시간대에는 지원주택에서 주거유지서비스를 통해 24시간 지원체계가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를 위해 부모연대는 주간활동 서비스 8시간, 방과 후 활동지원 시간 4시간 확대를 촉구했다.
이날 부모연대는 세부요구안으로 △발달장애인 생활실태 전수조사 △지원주택 도입 △활동지원서비스 등 일상생활 지원서비스 개편·확대 △발달장애인 낮 시간 이용 서비스 개편·확대 △지역발달장애인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구축 및 권리옹호 강화 △영유아기 발달장애인 및 가족 지원 체계 △발달장애인 고용 확대 △발달장애인 소득 보장 등을 요구했다.
단식에 들어가는 윤종술 부모연대 대표는 “어떤 발달장애인 가족은 탈시설이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말을 한다. 시설에서 나오면 아직 24시간 지원체계가 없기 때문”이라며 “여전히 발달장애인은 낮에 6시간밖에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18시간은 부모와 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낮 시간 8시간, 그리고 방과 후 4시간을 위해 단식에 들어간다. 우리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최소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싸움을 오늘부터 시작하려 한다”라고 외쳤다.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동료지원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 발달장애인 당사자 “내 삶을 내가 책임지고 사는 환경 만들어 달라”
발달장애인 당사자도 이번 결의대회에 함께 참여해 목소리 높였다.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동료지원가는 태어났을 때부터 가족 없이 여러 시설을 거쳐 지냈으며, 현재는 공동생활가정에서 탈시설 한 뒤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박 동료지원가는 “더 이상 발달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고,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탈시설을 준비하며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혼자 사는 것이 버거워 다 내려놓고 죽으려고도 했다. ‘내가 죽으면 내 장례는 누가 치러주지?’라는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박 동료지원가는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에 대해 “국가가 발달장애인을 책임지는 게 아닌, 내 삶을 내가 책임지고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가 나를 책임진다면, 나의 생활을 어디에서 하는지 그 결정권이 국가에 넘어간다. 수많은 장애인거주시설이 바로 국가가 나를 책임진답시고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나에게는 자기결정권이 있다. 나는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더 이상 우리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아 달라. 발달장애인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외쳤다.
부모연대 활동가들이 '발달장애인 생활실태 전수조사 실시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이가연
김수정 탈시설장애인당 대선후보이자 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은 “부모로서의 당사자성으로 탈시설장애인당 대통령 후보로 나갔다”라며 “혹자는 중증장애인이 도전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시설에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냐고 한다. 그런데 시설에서는 과연 어떻게 도전행동이 심한 장애인을 돌보고 있는가” 되물으며 “수많은 탈시설 장애인들이 약물로 관리를 당했다고 증언한다. 온종일 잠이 오는 와중에 입은 바짝 마른다고 한다. 더 돌보기 어려운 장애인은 정신병원에 가둔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 서울지부장은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투쟁하고 싸워서 만든 정책이 아직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시설을 계속 유지하고, 시설에 넣기 위해 줄을 서야겠는가. 그보다는 더욱 열심히 싸워서 지역사회 24시간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투쟁을 결의했다.
단식 투쟁 결의대회가 끝난 뒤 부모연대 활동가들은 쇠사슬에 발달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을 염원하는 띠를 묶었다. 보라색 띠에 '발달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이가연
이가연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