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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마이너]장애당사자와 부모의 삶을 벼랑으로 내모는 당신께 조회수 13,479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5.27
장애당사자와 부모의 삶을 벼랑으로 내모는 당신께
도전행동 횟수를 강제퇴소 근거로 삼은 주간보호센터 사태를 보며
“왜 우리의 것을 가지고 당신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겁니까?”
등록일 [ 2016년05월02일 15시41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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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평택의 한 장애인주간보호센터가 발달장애인 이용자의 도전행동 횟수를 서비스 종결 사유로 삼은 이용계약서를 이용자 측에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 관련 기사 : ‘도전행동 11회=강제퇴소’, 주간보호센터 “동의 안 하면 서비스 중단하겠다”) 계약서에 따르면 도전행동을 11회한 이용자는 강제퇴소를 당할 수 있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이자 (사) 한국장애인부모회 부회장이신 이경아 님께서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얼마 전, 한 중한 자폐성장애를 둔 부모님께서 자녀가 주간보호센터에서 쫓겨날 지경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청년이 주간보호센터에 가지 않으면 식구들이 일을 못 하고 꼼짝없이 그를 돌봐야 하니 참 곤란한 지경입니다. 센터를 더 이상 다니지 못하게 된 이유는 ‘도전적 행동이 몇 회 이상 나타나면 퇴소하겠다’라는 비인권적 계약에 사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고 지역과 언론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크게 관심 두는 사람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아버님께선 제게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이자 전문가로서 이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으로 두말할 것 없이 바로 승낙하였습니다. 그런데 부탁을 받은 이후로 여러 가지 바쁜 일정 탓에, 그리고 마음에 남은 미진한 어지러움으로 이 사안에 대한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은 당사자 청년이 당한 거절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유감스럽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고,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없노라”는 센터의 말에 동감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제 속에서 논리적 왜곡을 참아내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루느라 바쁩니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가장 낮고 약한 이를 이토록 돌보지 않고 모욕하는 것일까?’라는 납득할 수 없는 지점이 제 안에서 큰 상처가 됩니다. 이 생각과 느낌이 어느 정도 식어서 나와 피를 토하거나 울음이 되어 쏟아진 뒤에야 욕을 던지지 않고 말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권리와 장애인권과 국가와 행정적 절차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들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수없이 떠올랐습니다. 다시 분노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하는 수 없이 모든 논리적 생각들을 내려놓고 제 앞에 서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계시던 아버님과 그 청년, 그들의 존엄과 우리 모두의 서로 존중, 책임감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당신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제가 당신이라는 사람을 향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중 방식입니다. “나도 어쩔 수 없다. 나의 사정도 좀 봐달라.”라고 당신은 말할 것입니다. “이 사람만 도와줄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도 말할 것입니다. “이들을 돕는다면 다음엔 더 큰 것을 달라고 할 겁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는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당신을 한 개인으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신이 취하는 입장이 개인적 무지, 나쁜 인성에 따른 것으로 생각해버리면 설명은 쉽겠지만 참 슬프고 언짢은 일입니다. 저는 당신이 맡은, 그렇게 믿고 있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그편이 개인적인 문제로 보는 것보다 당신을 양해할 수는 있지만 제겐 더욱 섬뜩하고 불편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보면, 차라리 편안한 어조로 잘못된 지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증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주간보호시설 이용을 거절한 당신께 묻습니다. 그의 행위, 그가 앞으로 보일지 모르는 어떤 행위가 얼마나 과하고 위험하다는 것입니까? 그가 그러한 도전적 행위를 보이면, 그는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해도 아무 말 할 수 없습니까? 행동적 어려움, 낮은 적응 수준을 보이는 이들의 편에 서서 그의 일상이 유지되도록 지원하는 것이 당신의 할 일이 아닙니까?
 

저는 그 청년이 센터 이용을 하지 못하게 된 후에 할 수 있는 ‘남은 선택’이 무언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 묻고 싶습니다. 아! 당신은 이미 답변을 하셨군요. “유감스럽지만 그것은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당신은 무심한 얼굴로 시선을 거둡니다. 그렇군요. 그에게 남은 선택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선택하는 것은 그의 몫, 부모의 몫인 것이지 당신 문제는 아닙니다.

당신에게 말을 걸다 보니 아주 낯익은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오릅니다. 제 아이에게 장애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도움이 될만한 것을 찾아 헤맬 때, 사람들의 얼굴과 말에서 느꼈던 예의 바른 무성의함입니다. “유감스럽습니다.” “적당한 곳을 잘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뒤돌아서 나오면서 오도카니 춥고 어두운 바깥에 남겨지는 저와 아이를 느꼈습니다. 꼼짝없이 길로 내쳐진 거지꼴입니다. 저는 그때 덜덜 떨며 내 아이가 느낄 아픔과 추위를 온몸으로 감싸 안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부모가 안아주지 못할 때, 여전히 내 아이가 혼자 감당하여 버티지 못할 때, 딱딱하게 얼어붙어 사체가 될 내 아이를 떠올렸습니다.
 

저는 그 기억과 함께 어느새 다시 가장 힘없고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가 되어 울고 있는 내 이웃 옆에 똑같은 처지로 서 있습니다. 그리고 우느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이를 대신하여 나가라고 한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거절의 이유로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라거나, “그에게 너무 많은 혜택을 집중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돕는, 돕겠다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당신은 정말로 ‘저 사람’을 위해 ‘이 사람’이 받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인가요? 당신은 한정된 개수의 것을 지키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건가요? 누구의 것을 빼앗아 저리로 옮기는 일을 하는 건 옳은가요? 혹시 당신의 행위로 인해 가난하고 힘없는 우리가 자기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서로 다투게 된 건 아닌가요?
 

당신은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러다 죽겠다거나 내 탓이라고 협박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 말 속에 들어있는 당신의 공감 모르는 못된 마음이 불쾌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단 하나만 있는 상태는 선택 가능한 상태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주지 못하겠노라고 한 상황에서 주는 시혜적 혜택은 고마운 것이 아닙니다.
 

이제야 원래 당신이 관리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맡긴 것이란 게 기억이 났습니다. 왜 우리의 것을 가지고 당신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내 이웃을 거지, 깡패 취급하고 예비범죄자 취급을 하는 당신이 참 언짢게 느껴집니다. 그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의를 지키고 당신이 정말로 해야 할 일들을 성실히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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